이건호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특정 시기와 장소를 공유하는 인간들은 부산하게 부닥친다. 여러 개성 간의 마찰은 그 조우(遭遇)를 종종 격렬하게 만든다. 다툼 후 찾아오는 조화는 또 다른 세상을 내놓고, 그 안에 새로운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다시 부대끼며 살아간다. 역동적이다.
하지만 시공간을 끝없이 확장한 ‘우주’에서 ‘인류’의 일부분인 개인의 삶은 꼼지락거리는 정도다. ‘우주 밖’이 있다면, 거기서 조감하는 우리네 인생은 소름 끼치듯 고요해 미동도 안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작은 움찔거림을 통해 우리는 환경에 반응하고 교감한다. 그 미세한 움직임이 모여 인류의 ‘역사’를 쌓았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규모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큰 공룡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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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뽑은 글은 광장 이후 최인훈의 작품들을 섭렵하던 내가 석사 학위를 받던 1994년, 그가 10년간의 절필 끝에 내놓은 소설 ‘화두’의 머리말 ‘독자에게’ 후반부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나는 화두에서 광장의 명준에게 투영됐을 법한 최인훈의 자서전적 고백을 봤고, 거기서 감히 역사의 운동방식을 장착한 인류라는 공룡에 묻어 있는 ‘나’를 들여다봤다. 그는 우주의 작동 방식에 전율했다지만, 나는 그에게 전율했다.
이건호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