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군기반장·막걸리·깨알메모…881일 ‘최장수 총리’ 이낙연

입력 | 2019-10-28 08:56:00


일본 방문을 마친 이낙연 총리가 24일 서울공항으로 돌아오는 공군 1호기에서 동행기자단과 간담회를 열고 아베 총리와의 회담 성과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정부 군기반장, 사이다·막걸리·최장수 총리, 여니…’

28일로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새로 쓰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대신하는 호칭이다.

이 총리는 2017년 5월31일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로 임기를 시작해 28일 재임 881일(2년 4개월 27일)을 맞으며 1987년 10월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의 기록을 세운다. 직전 최장수 기록은 김황식 전 총리(2010년 10월1일∼2013년 2월26일)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여러 차례 개각이 있었지만 이 총리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이 총리는 여권의 대표적인 대권주자로 줄곧 여론조사 1위를 달려왔다. 내년 4·15 총선에서 핵심 역할을 맡으며 대권 주자로 등극한다는 이른바 ‘대권 시나리오’에 따라 올 여름부터 교체설이 나왔다. 하지만 조국 사태가 정국을 강타하면서 총리 지명에 따른 인사청문회, 국회 과반 동의절차 등은 문 대통령 국정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교체설은 수그러들었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의 국정 파트너로서 내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총리는 매주 월요일 정례회동을 통해 문 대통령과 국정대소사를 논의해왔다. 주례회동에는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비서실장,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총리실에서는 이 총리와 국무조정실장, 총리 비서실장이 참여한다.

이낙연 총리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정의당 지도부와 만찬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노회찬 원내대표. 뉴스1

한 여권인사는 청와대 비서실에 문 대통령에게 직언할 만한 ‘어른’이 없기 때문에, 문 대통령은 조언이 필요할 때마다 이 총리에 의견을 구하고, 이 총리의 건의가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한때 문 대통령을 움직이는 실세가 누구냐는 소문이 돌았을 때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윤건영 실장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이 총리일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많지 않았다. 특히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되는 데에는 이 총리의 조언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총리 앞으로의 총선과 대선에서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지만 후임자에 적합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그만큼 이 총리의 재임 기간 기록은 ‘대체 불가’였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가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거머쥔 이유다.

◇ 최장수 총리의 시작…호남 출신에 계파색 없는 ‘통합 이미지’

이 총리는 동아일보 기자를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뛰어들어 호남에 기반을 두고 4선 의원을 지냈다. 이후 전남도지사를 지내다 문재인 정권 출범 당시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총리직을 맡게 됐다.

이 총리가 발탁된 이유는 문 대통령의 탕평·통합 인사 정책 때문이었다. 이 총리는 호남 출신에 비(非)문재인계라 계파색이 적고 여야 모두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어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문 대통령은 직접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선을 발표하고 “이 지사 지명은 호남 인재 발탁을 통한 균형인사의 시작이자 협치행정·탕평인사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에서 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만들자, 문 대통령은 “한국당 안은 대통령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국회가 총리를 사실상 결정하게 되면 이 총리처럼 좋은 분을 우리가 모실 수 있을까요?”라며 깊은 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 李총리, 최장수 타이틀 이유는…겸손·꼼꼼, 그리고 막걸리

이낙연 총리가 지난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7호 태풍 타파,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대응상황 점검회의에서 수첩을 보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수첩에는 축대, 옹벽 붕괴, 취약지대 점검 등 여러 지시 사항들이 적혀있다. 뉴스1

이 총리는 높은 자리에서도 늘 자신을 낮춘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 총리는 늘 친서민 분위기를 풍기고, 공석에서 겸손한 발언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려 왔다.

이 총리는 2017년 11월9일 소방의 날 기념 소방공무원 격려 오찬에서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직업으로 소방관이 늘 1등을 하고 있다. 저는 기자를 하다가 정치인이 됐다. 기자도 정치인도 신뢰도가 매우 낮은 직종이다.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신뢰받는 분들 앞에서 잘난 척하는 건 얘기가 안 된다”며 스스로를 낮췄다.

이 총리는 지난 1일 국회에서 진행된 대정부질문에서 ‘대권후보로 거론이 되는데 이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그것은 별도의 문제”라며 “총리로 재임하는 한 총리로서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그는 “제 방식은 요란스럽지 않게 결과로 말하는 책임총리가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평소 즐겨 마시는 막걸리는 일반 시민들이 이 총리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서게 하는 매력 중 하나다.

이 총리는 유력 정재계 인물들을 공식석상에서 만날 때 더 대화가 필요할 경우 “다음에 막걸리 회동을 하자”고 이야기를 건넨다. 매주 일요일 저녁 당정청이 총리 공관에 모여 막걸리 회동하며 국정 운영을 의논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이 총리는 이처럼 소탈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을 중요시한다. 취임 초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당 관계자들을 예방한 자리에서 “꼭 정해진 회의체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소통도 많이 하려고 한다”며 “총리공관이 역사상 막걸리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게 그 예다.

지난주 일본 순방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도 막걸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 총리의 꼼꼼한 국정운영도 인기에 힘을 보탰다. 대표적으로 지난 4월 강원도 산불에 대처할 때 회의에서 언론에 노출된 ‘깨알 수첩’은 큰 화제가 됐다.

“‘바지 뒷주머니에 지금도 취재수첩을 넣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메모하는 생활은 신문기자 경험이 제게 남긴 귀중한 선물이다. 그것이 저는 자랑스럽다”(한국신문협회 창립60주년 기념 축하연에서)

그는 매순간 중요한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수첩을 꺼내 늘 적는 습관을 갖고 있다. 이 메모들을 모아 중요한 회의에서 펼쳐놓고 각 부처 장관들과 논의하는 것은 취임 기간 내내 볼 수 있던 일이다.

◇ 책임총리 3대역할…대통령 국정파트너, 내각 군기반장, 국회선 사이다

이낙연 총리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9회 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남윤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에 답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무엇보다 이 총리가 최장수 기록을 세운 것은 ’능력‘이라는 평가다. 이 총리는 취임 후 ’책임총리‘라는 말을 들으며 문재인 정부 내에서 역할을 해왔다.

그는 2017년 5월31일 취임사에서 ’내각다운 내각‘을 ’유능하고 소통하며 통합하는 내각‘이라고 했다. 특히 이를 위해 정부가 하는 일을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하는 ’설명의 의무‘를 강조했다.

같은해 8월 발생한 살충제 달걀 파동에서 당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자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보다 설명의 의무를 적절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많은 질책을 받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또 같은달 차관급 인사 임명장 수여식에서는 “공직자는 4대 의무(국방, 근로, 교육, 납세) 외의 ’설명의 의무‘가 있으며 이에 충실하지 않으면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군기를 잡기도 했다.

국무위원이나 총리실 간부들이 현안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행정편의주의적인 대책을 내놓으면 강도 높은 질책을 하면서 ’군기반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한 전임 장관은 이 총리와의 술자리에서 “회의에서 너무 다그치지 마라. 아무리 준비를 해도 나한테 질문을 할까봐 회의 들어가기가 무섭다”고 짜증 섞인 애교를 부렸다고 한다.

이 총리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을 향해 사이다 발언을 하면서부터다. 고성이 오가는 대정부질문에서 이 총리는 단 한번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다. 야당 의원들이 큰소리를 내도 늘 상대방을 응시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응한다. 이러한 침착함에 상대는 오히려 기가 죽는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모든 사안에 대해 똑 부러지게 대처하던 이 총리는 야당 의원들의 놀이터였던 대정부질문에서도 여지 없이 내공을 드러냈다.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그동안은 “개선·검토해보겠다”로 꼬리를 내리던 정부의 입장이 팩트를 근거로 질문의 허점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 9월 당시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대정부질문에서 “지난 4일 한미 정상이 통화한 뒤 백악관이 한국정부가 미국산 첨단무기를 대량구매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는데 우리 정부는 왜 이 사실을 숨기느냐”고 따지자 이 총리가 “구체적인 무기구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의원님께서 한국 청와대보다 미국 백악관을 더 신뢰하지 않으시리라고 본다”고 답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