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널 마킹/마이클 콕스 지음·이성모·한만성 옮김/608쪽·2만 5000원·한스미디어
“내가 밥 먹고 공만 찼으면 저것보단 낫겠다.” “발만 대면 골인데 저걸 날려?”
월드컵 시즌이면 모두가 TV 앞에서 ‘입 축구’계 메시가 된다. 이 각도에서 접고 감아 찼어야 한다는 둥 패스가 아니라 슛을 쐈어야 한다는 둥 탄성이 빗발친다. 과거 한 선수가 질책에 못 이겨 “답답하면 너희들이 뛰든가”라는 말을 뱉어도 진짜 대신 필드로 나갈 순 없는 노릇. 그렇다면 우리가 잘하는 ‘입 축구’를 조금 더 고급지게 즐길 방법은 없을까.
‘조널 마킹(Zonal Marking)’은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제목은 ‘지역 방어’라는 의미인 동시에, ESPN 등에서 활약하는 유명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운영하는 축구전술 사이트 이름이다. 책은 30년 간 변화한 유럽축구 전술의 흐름을 짚었다.
책은 선수의 순간적 선택이나 결과보다는 그 선택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전술적 움직임에 집중한다. 나아가 당대 축구판에서 ‘먹히는’ 전술 트렌드도 볼 수 있는 총체적 시야를 선사한다. 수백 개의 선수·감독·구단 이름이 등장해 입문서라기엔 다소 버겁다. 다만 생생한 필치와 실감나는 장면 묘사 덕분에 마니아에겐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난 ‘텍스트로 된 유튜브’이자 축구 역사서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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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단위 작위적 구분에 ‘그때 그 나라가 정말 최강자였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프랑스(2000~4년)의 경우 1998월드컵, 유로2000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2002, 2004년엔 쓴 맛을 봤다. 저자는 “이민자로 구성된 다양한 선수단 색채, 천재성을 가진 ‘10번’ 플레이어, 이를 떠받치는 수비 형 미드필더”가 당대 유럽축구를 주도한 흐름이라고 봤다.
책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전환기’라는 챕터를 넣어 한 국가의 주도권이 다른 국가로 넘어가는 장면을 설명했다. 어느 학문이든 업계든 시간이 지나면 강자를 꺾는 신흥 강호가 등장하는 법. 저자의 구분법처럼 축구판 주기가 4년 단위로 유독 짧은 건, 그만큼 선수나 감독의 치열한 고민이 필드 위에서 시시각각 반영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