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소소한 특별함이 매력인 카페 펠트의 창전점.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작업자가 철거하려고 사다리에 오르는 순간 만류해 그대로 둔 ‘은파 피아노’ 간판이 카페의 대표 이미지가 됐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 마포구 창전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은파 피아노’에는 피아노가 없다. 10년 넘게 있던 피아노 학원이 나간 자리에 카페가 들어섰다. 그런데 일반 카페에 당연히 있는 테이블이 없다. 그 대신 에스프레소 머신과 LP판, 앰프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커피 내리는 소리와 음악만이 가득하다. 이 독특한 공간은 카페 ‘펠트’다.
인근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하는 이 지역은 유동 인구가 거의 없다. 도로변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간판도 없는 데다 내부도 휑하다. 그런데도 인스타그램과 입소문으로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송대웅 펠트 대표(35)는 “주변에서 이런 곳에 카페를 해도 되겠냐는 걱정이 많았는데, ‘그냥 커피만 마시는 공간’이란 콘셉트가 오히려 독특하게 다가온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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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트는 사실 카페 브랜드가 아니라 원두를 가공하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다. 창전동 카페를 ‘쇼룸’이라고 하는 것도 주된 사업이 커피 납품이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유명했던 ‘매드커피’의 김영현 대표가 송 대표와 의기투합해 만든 브랜드로, 서울 용산구 사운즈 한남의 카페 ‘콰르텟’과 ‘헬카페’도 펠트의 커피를 쓴다.
카페라테가 특히 인기인 펠트 커피의 원두는 현지에서 직접 고른 것들이다. 송 대표는 매년 중남미의 온두라스, 니카라과 농장에서 한 달 동안 지낸다. 한 해 날씨나 작황은 어떤지, 제일 잘하는 생산자는 누구인지 등 온갖 이야기를 듣고 커피나무가 자라는 과정도 지켜본다. 송 대표는 “국내에서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좋은 생두를 구할 수 있어 효율성에서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지만 직접 체험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장기적인 계획도 구상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D타워 지하의 ‘펠트 광화문점’(위 사진)은 창전점처럼 장식은 최소화하고 주변의 인테리어 요소를 끌어들여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만들었다. 서울 강남구의 ‘펠트 도산공원점’은 패션 브랜드 준지의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에 있다. 텍스처 온 텍스처·펠트 제공
스튜디오Stof에서 건축 디자인을 맡은 D타워 펠트는 간판은 있지만 ‘은파 피아노’의 이미지를 유지하고자 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빌딩 지하 연결 통로에 자리 잡았는데, 주변 공간의 요소를 내부 인테리어에 그대로 가져와 마치 전체가 한 공간인 것처럼 만들었다. 그러자 버려졌던 공간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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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급하게 매장이 여러 곳 생겼어요. 그렇지만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고 싶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