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고전을 읽는 데 취미가 없다 하더라도 간혹 신문지상이나 방송에서 소개해준 덕분에 노자(老子)가 썼다는 ‘도덕경’의 제1장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이 장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난다. “그윽하고 더욱 아득해 모든 오묘함과 아름다움이 거기에서 나온다(玄之又玄, 衆妙之門).” 그렇다. 도가 신비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까닭은 그것을 포착해 이름하고 형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도덕경의 첫 장은 미세스 달링의 매력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각주처럼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도덕경’은 이미 한(漢)나라 당시에 위정자들의 ‘정치비급’으로 인기를 얻었다. 저 위대한 도(道)는 현묘한 매력만으로 천지만물이 알아서 움직이게 만드니 이 매력을 황제가 본받을 수만 있다면 그에게 감화돼 모인 유능한 인재가 제국을 적절히 운영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매력 통치는 어쩐지 전통시대의 여성들에게 기대됐던 남성들을 움직이던 방식과 닮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도덕경’도 당시 기준으로 여성성을 이상적인 품덕으로 묘사한다. 공격이 들어오면 유도 선수처럼 흘려버리고, 높은 데서 누르지 말고 낮은 데서 기다리며, 화내지 말고 달래 주라는 가르침이다. 말하자면 무력으로 밀어붙일 때보다 매력으로 당길 때 일이 더 잘 풀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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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에이사는 1980년대 중반에 발표한 삼국지 게임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수십 년간 십여 편의 후속작을 내놓는 동안 결코 바꾸지 않은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게임 상에서 무력치가 가장 높은 이는 여포요, 지력은 제갈량이며, 매력은 유비다. 그윽한 매력을 가진 군주는 나라를 경영할 때 수고롭지 않다. 굳이 찾아서 부르지 않아도 조자룡이 와서 같이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실종됐던 관우도 조조가 약속한 부귀공명을 마다하고 연어처럼 집을 찾아 돌아온다. 공명은 과연 똑똑해서 그런지 유현덕의 매력에 완강히 저항하지만, 그래도 세 번쯤 찍으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홀라당 넘어온다. 일단 넘어오고 나면 차라리 단기필마로 백만 대군을 대적할지언정 결코 우리 ‘대장님’, 우리 ‘형님’을 배신하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 스타일로 설명하면, ‘재벌가 상속녀’인 조조는 가난한 남자 주인공 관우가 몹시 맘에 들었다. 그를 얻기 위해 열정적으로 달려들어 집도 주고 취직도 시켜주고, 훈장도 달아주고, 최고급 스포츠카도 선물해줬지만 관우는 ‘돗자리 알바’ 출신 유비의 손 편지 한 통을 받고 결국 조조가 준 스포츠카(적토마)를 몰고 그에게 달려간다. 여러분도 얻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미세스 달링처럼, 유비처럼, 저 그윽한 도(道)처럼 밀지 말고 당길 궁리를 해보자. 세상사는 데 매력만큼 좋은 능력치가 또 없다.
안동섭 인문학자 dongsob.ahn@univ.ox.ac.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