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보복 파장]‘美 우군 만들기’ 외교전 본격화
지난주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청와대와 관계 부처 담당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4일 보복 조치를 본격화한 직후였다. 미국 변호사로 일이 안 풀리면 종종 영어로 의사 표현을 하는 김 차장이 현장에서 직접 부딪쳐서라도 진전된 결과물을 가져와야 한다는 점을 특유의 공격적인 표현으로 강조한 것. 하지만 이후에도 일본은 한국의 대북제재 위반 의혹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전면전을 예고했고 김 차장은 미국 워싱턴을 전격 방문해 직접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설득에 나섰다. 미국을 향한 한국과 일본의 전방위 외교전이 본격화된 것이다.
○ 워싱턴행 ‘원 웨이 티켓’ 끊은 김현종
10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 인근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김 차장은 준비된 차량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김 차장은 곧바로 백악관을 방문해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을 만났다.
사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김 차장은 추가 면담 일정이 잡히면 미국 체류 일정을 연장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편도 편도만 예약했다고 한다. 두 차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면서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를 비롯한 미국 경제 및 통상 부처 관계자와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겠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2017년 11월 국빈 방한 당시 청와대 공식 환영식에서 김 차장과 악수를 나누며 “당신이 FTA 가이(guy)냐”고 묻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진두지휘하면서 미국 측과 끝장 협상을 벌여 ‘FTA 전사(戰士)’라는 평가를 받았던 김 차장이 직접 미국을 방문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일본 보복 조치 사태 장기화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 협상 경험이 없는 김 차장에게 외교정책을 총괄하도록 한 것은 전통적인 외교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공격적인 스타일인 데다 미국식 협상 방식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며 “김 차장의 방미는 그만큼 이번 사태에 미국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 동남아 등에도 경제보복 철회 공조 설득
김 차장의 방미를 계기로 청와대의 전방위 외교 행보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는 대기업과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 및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경제·산업 대응과 함께 김 차장을 중심으로 한 외교적 행보를 통해 투 트랙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주 김 차장에게 전화해 “직접 기업인들을 만나야 이게 국가 안보적으로 어떤 이슈인지 알게 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 차장은 지난주부터 삼성전자 등 피해 기업들과 접촉하며 외교적 대응 구상을 조율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11일 일본을 거쳐 17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만큼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일 외교전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미국에 이어 중국,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에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철회를 위한 협조를 당부할 방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반도체 수출 규제는 글로벌 시장이 다 걸려 있는 문제”라며 “미국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다른 나라와의 공조를 위한 설득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