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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정은]전쟁을 속삭이는 자, 트럼프 곁 볼턴을 주시해야

입력 | 2019-05-20 03:00:00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관심사는 이란과 베네수엘라예요. 북한은 후순위죠. 북한 문제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주무를 맡아요. 서로 같이 들여다보지만 역할 비중은 나뉘어 있다고 할까.” 이달 초 기자와 커피를 마시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는 볼턴 보좌관 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이란이 핵합의(JCPOA) 조건부 탈퇴를 선언하면서 중동의 긴장감이 고조되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는 볼턴 보좌관이 결국 대통령의 생각을 움직이는 게 아니냐”고 묻자 “폼페이오 장관도 백악관 참모 못지않게 트럼프 대통령과 자주 만나고 대화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폼페이오 장관의 영향력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겠지만 ‘볼턴에게 북한은 후순위’란 메시지가 귀에 꽂혔다.

이란의 거센 반발로 중동에 전운이 감돌면서 볼턴 보좌관의 우선순위는 더 분명해진 듯하다. 미국이 중동에 핵 항모전단과 전략폭격기를 급파하고, 백악관이 대규모 군사병력의 파견을 내부적으로 검토한다는 기사들도 쏟아졌다. 미 정부와 언론의 관심은 온통 이란에 쏠려 있다.

그러면서 볼턴 보좌관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네오콘의 선봉에 선 그가 이처럼 강경한 미국의 대응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CNN 방송은 최근 그에게 ‘전쟁을 속삭이는 자(war whisperer)’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이란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견제로 향후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하지만 볼턴 보좌관이 미 외교안보 정책의 조타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볼턴 보좌관이 이란 정권의 전복을 주장해온 초강경 매파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뉴스도 아니다. 그는 2003년 이라크전 때 이미 ‘전쟁 개시의 단추를 누르게 한 자’로 지목받았다. 그는 이후 폭스뉴스 논평가 등으로 활동할 때에도 선제적 군사공격과 정권교체 등에 대한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거침없는 ‘최대 압박’ 전략은 순식간에 중동 정세를 바꿔놓고 있다.

그런 볼턴 보좌관에게 북한은 계속 후순위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만일 이란에서 전쟁이 발발한다 해도 중동 지역에 국한된다. 게다가 이란은 아직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반면, 북한은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 본토로 쏠 수 있는 정권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위협 수위가 결코 이란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중동과 남미 상황이 진정되고 나면 북한이 언제 그의 레이더로 다시 들어갈지 알 수 없다. 이미 미사일 발사로 저강도 도발을 시작한 북한은 점차 그 수위를 높이며 미국을 시험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

최근 단독으로 방한하려던 볼턴 보좌관의 계획은 트럼프 대통령의 6월 방한 일정 등과 맞물려 일단 취소됐다. 북-미 협상의 장기 교착 속에 강경파 볼턴을 중심으로 한 과격한 대북 정책에 힘이 실릴 때를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놓지 않으면 한반도 상공과 해역에도 언제 핵항모와 전략폭격기가 대거 급파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란을 놓고 벌어지는 미국 내부 정책과 참모진 간의 균열 등 흐름 또한 그래서 더욱 예의주시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