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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연수]소주성 논란에 대하여

입력 | 2019-05-16 03:00:00

최저임금 등 정책실패 되풀이 말기를… 혁신성장 공정경제에 좀 더 성과내야




신연수 논설위원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악(萬惡)의 근원도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주 한 토론회에서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한 말이다.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소주성 탓을 하는 분위기에 답답함을 토로한 듯하다. 실제로 지난 2년간 경제정책에 대한 논란, 특히 경제에 나쁜 조짐이 보일 때 늘 나오는 것이 소주성이었다. 기승전결 대신 ‘기승전 소주성’이라 할 만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정부 탓이 크다. ‘포용 성장’ 같은 좀 포괄적인 개념을 국정과제로 삼아야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텐데, 소주성이라는 하나의 경제이론, 그것도 논란이 있는 이론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입지를 좁혔다. 또한 최저임금 시간당 1만 원이라는 대선 공약에 매몰돼 너무 과격하게 임금을 올렸고, 주 52시간 근무제도 준비 없이 시작해 기업과 시장에 충격을 줬다.

미국, 유럽, 일본도 정부와 정치권이 임금을 올리라고 기업들을 압박하고, 일본은 지난해 사상 최고로 최저임금을 올렸지만 그래봤자 3%였다. 한국처럼 연간 두 자리씩 올린 곳은 중국처럼 고성장 국가 외에는 없었다. 더구나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이 많은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조치가 나왔는데도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나도 놀랐다”고 할 만큼 관리되지 않은 집행 과정도 문제였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근의 기승전 소주성은 좀 지나치다. 1분기 수출과 설비투자가 줄고 이로 인해 성장률이 나쁜 것은 미중 무역전쟁과 반도체 경기 탓이 큰데, 경제가 나쁘면 무조건 소주성 탓이다. 수출 비중이 높은 일본과 독일도 최근 경제가 좋지 않다. 일각에서는 끊임없이 소주성을 포기하라, 경제정책 방향을 바꾸라고 하는데 대부분 어떤 정책을 바꾸라는 것인지가 빠져 있다.

소주성을 비판할 때 대상이 되는 정책은 주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이미 대통령이 작년에 “1만 원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돼 죄송하다”며 속도조절 의사를 밝혔고 이번 2주년 인터뷰에서도 “우리 사회와 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는 지난해 국회가 통과시킨 것으로, 이제는 그에 따른 사회 경제적 보완책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이미 결론이 난 두 가지 정책을 놓고 자꾸 비판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다름없다.

소주성이든 포용성장이든, 가계소득을 늘림으로써 수출에 치우친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내수를 좀 키우고 불평등도 완화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정책적으로는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외에도 의료비 주거비 교육비를 줄여서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기초연금과 실업수당을 높이는 등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수단들이다. 이런 정책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고 동의한다. 그런데도 소주성 전체를 폐기하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지금 문제는 공정경제나 혁신성장 같은 다른 경제 목표들에서 구체적 정책수단이나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래 먹을거리 가운데 시스템반도체는 삼성과 관련 중소기업들이 키운다 하더라도, 미래차나 바이오 등은 손에 잡히는 게 없다. 경제구조를 바꾸고 혁신을 촉진할 공정경제 법안들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사실 경제학은 자연과학이 아니라서 주류 이론이라는 것들도 대부분 지금까지 논쟁 중이며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소주성에 대해 학술 논쟁을 벌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정책과 관련해서는 이름이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 논쟁하면 좋겠다. 정부도 규제개혁이니 혁신성장이니 시늉만 하지 말고 적극적인 정책 집행과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