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트럼프 회담 과제는 불신 해소… 동맹 흔들리면 韓 발언권 약화 북핵 폐기 가시화할 때까지 남북경협·제재완화 집착 말아야 ‘한국은 북한 편’ 의심 지우려면 친북·반미 세력과 거리 유지 필요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동맹의 생명은 신뢰이고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원인은 신뢰의 결핍에 있다. 비핵 평화협상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과 발언권도 동맹 간 신뢰 수준에 비례한다. 신뢰가 흔들리면 소통도 정책 공조도 겉돌 수밖에 없고 민감한 정보 공유조차 어렵다. 상호불신의 골이 외교적 수사로 덮어버리기 어려울 만큼 깊어졌고 동맹이 중병을 앓고 있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러면 신뢰 회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최우선 과제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와 우선순위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문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제거하고 북한의 핵 인질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엄중한 외교안보정책 목표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아무리 북핵 폐기가 최우선 목표라고 강조하더라도 실제로는 비핵화보다 남북관계 발전을 더 중시하고 비핵화 목표를 저해할 수도 있는 제재 완화와 남북 경협에 조급증을 내면 대통령의 진의에 대해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 폐기가 가시화될 때까지는 문 대통령이 남북 경협과 제재 완화에 대한 집착을 접어두고 대북 협상력의 약화보다 강화에 베팅할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미국의 불신을 해소하는 첫걸음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이 북한 편이라는 미국 조야(朝野)의 의심을 불식해야 한다. 미국이 모든 악의 근원이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위협은 핵 무장한 북한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서 나온다고 믿는 세력은 미국과의 동맹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미국이 남북관계의 발목만 잡는다고 분개할 것이다. 이들이 대북정책을 주도한다는 오해를 받으면 한미 간 신뢰는 발붙일 틈이 없어진다. 이런 세력의 철학과 이념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나 정부의 복심(腹心)을 대변하는 듯한 공개적 언행은 자제시킬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겠다는 발상도 북핵을 우리의 문제가 아닌 미국의 문제로 보는 3자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으로 동맹의 정신과 양립할 수 없다. 북한이 애용하는 ‘우리 민족끼리’ 구호는 동족으로서의 감성을 자극하지만 남북이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하자는 취지에 함부로 장단을 맞추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 무력을 증강하는 데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비핵화 시늉만 내겠다는데도 그 가치를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홍보까지 대행해 주는 것도 미국의 대북 협상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북한 편을 드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북한의 잘못으로 초래된 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으로 돌리거나 미국을 원망하는 언행이 대통령의 친위그룹에서 나오는데도 청와대가 침묵하면 이에 내심으로 동조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끝으로 한미 간 협의 내용을 사실대로 모두 공개할 필요는 없으나 의도적으로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대외 보안을 전제로 협의한 내용을 사전 양해 없이 공개하는 것도 신뢰를 해친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