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돈의문 박물관 마을 전경. 서울시 제공
담장 곳곳에 엄숙한 고딕체 벽보가 붙었다. 골목을 돌자 빛바랜 아이보리색 2층 건물이 나타났다. 3일 오전 11시 총천연색 간판의 ‘새문안극장’ 2층에서는 1960년 개봉한 영화 ‘로맨스 빠빠’가 흑백 필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영화관 벽에 붙은 전단은 ‘맨발의 청춘’(1963년), ‘이상한 나라의 폴’(1973년) 등이 ‘절찬 상영’되고 있음을 알렸다.
마을이 통째로 과거로 향한 듯한 이곳은 서울 종로구 돈의문 박물관마을이다. ‘근현대 100년 기억저장소’라는 콘셉트 아래 구한말부터 1980년대까지의 생활상을 공간 곳곳에 재현해 냈다. 마을 자체가 근현대 생활사 박물관 같다.
지금은 9770m² 공간에 건물 30채가 들어섰다. 이 중 12채는 마을전시관인데 ‘돈의문 구락부’가 대표적이다. 구한말 개화파 인사들이 외국인들과 사교모임을 즐겼던 구락부(俱樂部·영어 club을 한자로 음역한 말)에 들어서자 붉은 장막을 배경으로 축음기와 스탠딩마이크 같은 소품이 있다. 조선에 커피문화를 보급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상인 부래상(富來祥·Plaisant), 포드 쉐보레 등 자동차를 판매한 미국인 테일러(W W Taylor) 등 새문안 동네에 거주했던 이방인 이야기를 주제로 한 전시도 있다.
개화파 인사들이 외국인들과 사교 모임을 갖던 구락부(俱樂部)를 재현한 ‘돈의문구락부’(왼쪽 사진), 1960∼80년대 영화를 매일 상영하는 ‘새문안극장’. 서울시 제공
추어탕과 순댓국 등을 팔던 먹자골목은 도시형 한옥으로 탈바꿈한 체험교육관으로 바뀌었다. 9곳의 체험교육관을 찾으면 한지공예와 서예, 시대별 스타일의 화장과 복식(服飾), 자수공예, 닥종이공예 등을 배워볼 수 있다. 다른 9개 ‘마을창작소’에서는 ‘근현대사를 저장한다’는 취지에 맞는 전시나 워크숍이 열린다. 시대별 골목놀이, 근현대 대표 브랜드 디자인 등이다.
전체적으로 중장년층은 어린 시절 향수를 느낄 수 있고, 레트로(복고)에 관심이 많은 요즘 젊은이들까지 흥미로워할 볼거리와 놀거리가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물관마을 조성에는 약 350억 원이 들었다. 연간 운영비는 25억 원으로 예상한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