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호는 일본 최고(最古)의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서 따왔다. 과거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247개의 연호와 달리 첫 ‘일본제’ 연호다. 만요슈 ‘매화의 노래’ 서문에 등장하는 ‘초봄 좋은 달이 뜨니 공기 맑고 바람은 부드럽다(初春令月氣淑風和)’에서 두 글자를 따왔다. 아베 신조 총리는 새 연호에 대해 “아름다운 마음을 모아 문화를 태어나게 하고 키우자는 뜻”이라고 밝혔다.
▷왕의 치세를 뜻하는 연호는 기원전 중국에서 유래해 한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에서 사용됐다. ‘황제는 시간도 지배한다’는 사고에 근거해 왕의 권위를 높이는 데 쓰였지만 백성들의 안녕도 염원했다. 그 뒤 각국에서 연호가 사라지면서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호를 쓰는 현대 국가가 됐다. 지금도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연도를 표기할 때 연호를 사용하니 일상생활에 밀접하다. 다만 사용자는 감소 추세다. 마이니치신문 1975년 조사에서는 82%가 ‘주로 연호를 사용한다’고 했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34%로 줄었다(연호와 서기를 병용한다는 답을 합하면 68%). 최근 몇몇 시민이 “연호가 바뀌는 것이 시간의 연속성을 끊어 ‘개인의 존엄’과 ‘인격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민이 ‘왕의 시간’에 갇혀 세계와 유리된다는 주장이다.
광고 로드중
▷쇼와(昭和·1926∼1989) 시대가 침략전쟁과 패전, 전후 복구와 고속 경제성장기였다면 이달 말 막을 내리는 헤이세이(平成·1989∼2019)는 평화로웠지만 동일본 대지진 등 거대 재해와 ‘잃어버린 20년’, 저출산 고령화가 본격화한, 일본이 움츠러든 시기였다. 아베 총리는 어제 만요슈의 의미를 강조하며 “매화처럼 피어나는 일본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강대국일수록 자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글로벌 세태에 더해, 유독 일본의 전통과 문화를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국수성의 그림자가 엿보였다면 지나친 걸까.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