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까talk]에티켓 실종된 쉼터형 서점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에 마련된 대형 테이블에서 독서하고 있는 시민들. 서점 곳곳에는 ‘한꺼번에 많은 도서를 쌓아두지 않기’ ‘저작권 보호를 위해 사진 촬영하지 않기’ 등의 에티켓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동아일보DB
책만 사고파는 서점은 이제 구시대 유물이 됐다. 거의 모든 대형 서점이 먹고 마시고 쇼핑하다가 쉬어가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도서 정가제 시행과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위기에 몰린 오프라인 서점이 자구책으로 ‘카페화’와 ‘도서관화’를 택했기 때문이다.
최근 광고회사 이노션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생성된 서점 관련 검색어를 분석한 결과 서점을 문화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점에서 휴가를 즐기는 ‘서캉스’(서점+바캉스) ‘책캉스’(책+바캉스) 문화도 자리 잡았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서울 중구 ‘아크앤북’이 대표적이다. 일본 쓰타야 서점을 본뜬 공간으로 최근 ‘핫’한 카페와 식당이 다수 입점해 있다. 주중엔 직장인들의 틈새 휴식 공간으로, 주말에는 가족 나들이 명소로 인기가 높다.
한 대형 서점 매장에 비치된 책. 손때가 타고 너덜너덜해졌다. 출판계에 따르면 훼손을 막기 위한 비닐 포장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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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겸한 독립서점의 사정도 비슷하다.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는 “커피를 시켰으니 책을 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손님이 많은데, 한 시간씩 새 책을 보면 그 책은 다른 사람이 구입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며 “책 훼손을 줄이기 위해 구입한 책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새벽감성1집’의 김지선 대표는 “엄연히 판매용 새 책인데 카페에 진열된 책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 초반에 스트레스가 컸다. 손님들의 인식이 성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불공정한 데다 책을 홀대하는 서점의 방침도 도마에 올랐다. 한 1인 출판사 대표는 “대형 서점의 공간 상당 부분이 카페, 생활용품점 등 다른 사업을 위한 공간이 돼 버렸다”며 “책을 다른 제품 판매를 위한 일종의 ‘미끼’로 사용하는 듯해 불쾌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서점 측이 견본 책을 비치하도록 제도적으로 못 박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에 대해 한 대형 서점 관계자는 “팔리지 않은 책은 출판사에 되돌려 주는데, 그 가운데 손때가 묻은 책이 더러 섞인다. 그런 부분까지 일일이 걸러낼 수는 없다. 출판사에서 반품을 거부하는 경우 책을 구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을 대하는 자세를 비롯해 도서 문화 전반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도서관과 서점은 엄연히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점업계는 물론이고 시민들도 책의 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히 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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