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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개봉 ‘바이스’… 넘버1 같은 넘버2 딕 체니를 통해 본 미국 정치의 민낯

입력 | 2019-04-01 03:00:00


영화 ‘바이스’에서 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오른쪽)는 실세 부통령 딕 체니에게 밀려 백악관의 허수아비처럼 그려진다. 콘텐츠판다 제공

“부통령은 허수아비야. 대통령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자리잖아.”

미국 전 부통령 딕 체니(크리스천 베일)의 부인 린 체니(에이미 애덤스)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 ‘바이스’를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바이스’는 대통령보다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부통령 딕 체니의 일대기를 담았다.

애덤 매케이 감독은 전작 ‘빅쇼트’(2016년)에서 2008년 세계를 뒤흔든 금융 위기의 뒷얘기를 그리며 미국 경제의 허상을 폭로했다. ‘빅쇼트’가 미국 금융 산업이 실은 거대한 거품이라는 것을 한 편의 사기극을 보는 것처럼 표현했다면 ‘바이스’는 체니 개인의 일대기를 통해 미국 정치 심장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렸다.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기회를 엿보는 유령 같은 인물로 묘사된 체니와 그의 권력에 붙은 실세들이 평범한 이들의 삶을 뒤바꿀 엄청난 결정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리는 과정이 한 편의 블랙코미디로 묘사됐다.

체니와 그의 측근들은 부자들의 세금을 줄이고, 석유 재벌들과 결탁할 뿐 아니라 헌법과 국제협약을 무시하고 9·11테러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다. 당시 국무장관 콜린 파월,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같이 쟁쟁한 인물들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니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에 허수아비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풍자와 유머는 감독의 전작보다 훨씬 대담해졌다. 체니가 부통령직을 수락하며 조지 W 부시(샘 록웰)와 담판을 짓는 장면은 와이오밍에서 낚시를 즐기던 자연인 체니의 모습과 교차되며 체니가 던지는 미끼를 덥석 무는 부시를 더욱 바보처럼 보이게 만든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딕 체니가 동성애자인 딸을 위해 정계를 은퇴했더라면’이란 질문에 대답하듯 영화 중간 평화로운 음악과 함께 엔딩 자막이 올라가기도 한다.

체니 역을 위해 20kg을 찌우고 5시간이 넘는 분장을 감내한 베일과 애덤스 간 연기 합이 일품이다. 11일 개봉. ★★★(별 5개 만점)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