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도심 오피스-상업시설 재활용하는 ‘공간 디벨로퍼’
기획을 통해 죽은 공간을 살리는 ‘공간 디벨로퍼’가 주목받고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1가의 ‘아크앤북’은 3년 가까이 방치됐던 건물 지하를 서점과 식당가로 개발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아트앤북이 들어선 부영을지빌딩(옛 삼성화재 을지로빌딩) 지하는 부영그룹이 2017년 초 삼성화재로부터 매입하기 전인 2015년부터 공실로 방치됐던 곳이다. 삼성화재 직원교육장으로 설계돼 천장이 낮아 식당이나 판매점 같은 상업시설이 들어오기 어려웠다.
하지만 도심 속 문화공간으로 콘셉트를 바꾸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과거 인쇄소가 자리하던 을지로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서점으로 기획하고 일상, 주말, 스타일, 영감, 네 가지 테마로 꾸미면서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아크앤북 관계자는 “서점의 경우 주중 평균 400여 명, 주말 평균 700여 명이 방문하고 있으며 오픈 한 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연남장은 1970년대 유리공장으로 지어진 낡은 건물을 코워킹스페이스로 되살렸다. 어반플레이 제공
2014년 서울 광진구 아차산로 스타시티몰에 입점한 ‘오버더디쉬’도 성공적인 공간 개발 사례로 꼽힌다. 역세권이면서도 오락실, 식당 등이 줄줄이 손을 털고 나갔던 꼭대기 3층을 압구정동 장사랑, 신사 가로수길 ‘교동짬뽕’ 등 전국의 숨은 맛집이 모인 편집숍 형태로 바꿔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공간 디벨로퍼’들은 택지를 개발하고 건물을 올리는 기존 부동산 디벨로퍼들과는 다르다. 비교적 소규모 자본을 들여 쓰임이 다해 방치된 곳의 가치를 ‘업사이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10년 이상 장기임대로 원주민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는 것도 위 사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낙후된 지역이나 공장지대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것과도 차이가 있다. 후원금을 기반으로 하거나 예술성을 최우선에 두기보단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을 고민한다. 이명훈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과 같은 과밀화된 대도시에선 작은 기업이 주도하는 이 같은 공간 개발이 의미 있는 시도이며 앞으로도 발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