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 이은 LG家의 나라사랑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 지원했던 LG창업주 구인회 회장 애국정신 이어받은 LG하우시스, 현충시설 개보수 사업 펼쳐
만해기념관 개보수.
구 창업회장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일화는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던 194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남 진주에서 ‘구인상회’라는 포목상을 운영하고 있던 구 창업회장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당시 유림사회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혔던 백산 안희제 선생이었다.
근 20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구 창업회장은 쉽게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백산 선생은 고명한 학자 안효제 교리의 친척 동생으로 일찍이 구 창업회장의 조부인 만회 구연호 선생과 안 교리가 한양에서 같이 지낸 인연으로 친분이 있었고, 안 교리가 만회 선생을 만나러 올 때마다 백산 선생 또한 함께 왔었기 때문에 소년기의 구 창업회장과 수차례 만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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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관한 우당 이회영 기념관을 기념관 관계자와 관람객이 살펴보고 있다.
신병 치료차 잠시 귀국했던 백산 선생은 만주로 돌아가기 전, 독립군 양성에 필요한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1만 원을 부탁하고자 구 창업회장을 찾아온 것이다.
1931년 7월에 자본금 2000원으로 구인상회를 창업한 구 창업회장에게 1만원은 당시 80kg짜리 쌀 1가마니가 약 20원임을 감안한다면 쌀 500가마니에 해당하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일제로부터 지명수배를 받고 있던 백산 선생에게 독립자금을 지원하다 발각되면 목숨은 물론이고 사업기반과 집안까지 풍비박산날 것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구 창업회장은 “당할 때 당하더라도,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을 보태는 것이야 말로 나라를 돕는 일”이라며 1만 원의 독립운동 자금을 쾌척했다.
이런 큰 결심의 배경에는 구 창업회장의 부친인 춘강 선생이 1930년경 의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일정 구여순 선생을 통해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에게 독립운동 자금 5000원을 지원한 일이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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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안창호기념관 개보수.
또 2016년부터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 및 국내외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주거환경 개선 활동도 진행해오고 있다. 올해까지 독립유공자(후손 포함) 8명과 국내 참전용사 8명, 해외 참전용사 3명 등 총 19명을 선정해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했다.
김민식 기자 m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