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뉴욕 특파원
트럼프 대통령의 연단 뒤엔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자 올해 다시 하원의장이 된 낸시 펠로시가 버티고 서 있었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서 내세운 대응 연설자 역시 조지아주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에 도전했던 스테이시 에이브럼스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여성들은 흰옷을 입었고, 남성들은 어두운 색 정장을 입었다. 이 대비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성별 격차(gender gap)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전했다.
“여성들은 지난해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의 58%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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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목요일 개발도상국 여성의 경제적 권한에 초점을 맞춘 정부 차원의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TV 카메라는 이번에는 회의장에 앉아 있던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비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속대로 7일 ‘범세계 여성 개발 및 번영 사업(W-GDP)’에 착수하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 어젠다를 지휘하고 있는 이방카 보좌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W-GDP는 2025년까지 5000만 명의 개발도상국 여성이 경제적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며 “세계 모든 지도자들이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여성의 경제적 권한 강화’는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59%로 일본(69.4%), 미국(67.9%)보다 저조하다. 특히 국가 공무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지만 여성 고위직 공무원은 5%가 채 안 된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 경제연구소 부회장은 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놨다. 미국 정치권을 하나로 묶은 공통분모인 ‘여성의 경제적 권한 강화’를 한미 경제협력을 진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했다. 커틀러 부회장은 최근 내놓은 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은 백악관이 계획하고 있는 여성의 경제적 권한에 대한 범세계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방카 보좌관은 “여성의 경제적 권한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만 보지 말라”고 주장한다. 여성 인적자원의 질이 높아지고 경제적 활동이 강화된다면 개발도상국과 미국, 전 세계의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의 경제적 위상이 아직도 낮은 건 이 문제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여성들을 위한 문제로만 국한한 ‘근시안’ 때문은 아니었을까. 트럼프의 국정연설은 이 시대의 ‘신스틸러들’인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주문하고 있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