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마다 반복되는 ‘헌혈 절벽’
설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서울 노원구 헌혈의 집 앞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헌혈의 집은 설 연휴 5일 중 이틀만 쉬고 문을 열었다. 한 명이라도 더 헌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날 헌혈의 집은 한산했다. 침대 7개 중 1곳에서만 피를 뽑고 있었다. 나머지 대기 좌석에는 자원봉사자들뿐이었다.
○ 어김없이 찾아온 ‘2월 혈액 부족’
2월 헌혈 절벽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교 방학으로 고교생 단체 헌혈 참자가가 크게 줄기 때문이다. 헌혈은 만 16세부터 가능하다. 국내 헌혈 인구 10명 중 3명(31.2%)이 16∼19세인 10대다.
특히 올해 2월은 독감 같은 겨울철 질병이 유행하는 데다 설 연휴까지 몰려 있어 헌혈이 더욱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설 연휴 해외 여행객이 늘고 있는데 헌혈 제한 지역에 다녀오면 1개월 이상 헌혈을 할 수 없어 헌혈자가 더욱 줄게 된다”며 “설 연휴가 끝나면 혈액 보유량 유지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혈액 보유량은 4.8일로 ‘관심’(5일분 미만) 단계다. 지난달 29일 혈액 보유량은 5.0일로 간신히 적정 보유량(5일분 이상)을 유지했지만 일주일 만에 적정 보유량 밑으로 떨어졌다.
특히 O형 혈액 보유량은 3.6일로 네 가지 대표 혈액형 중 보유량이 가장 적다. O형은 모든 혈액형에 수혈할 수 있다 보니 의료기관에서 다른 혈액형에도 응급용으로 O형 혈액을 수혈하는 경우가 많아 만성적인 수급 불균형 현상이 생긴다. A형(5.2일)과 B형(5.0일), AB형(5.6일)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중장년층의 헌혈 동참이 근본 대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전체 인구 중 헌혈자는 5.7%로 선진국보다 높은 편이지만 특정 연령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 국내 헌혈 인구 10명 중 7명(71.0%)이 10, 20대다. △30대는 14.1% △40대 10.2% △50대 3.9%로 나이가 들수록 헌혈 참여가 저조하다.
중장년층이 헌혈에 동참하지 않는 건 젊은 세대보다 헌혈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헌혈을 하더라도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나 간염 등 혈액을 매개로 하는 질병에 감염되지 않는다. 헌혈 시 사용하는 주사기와 혈액백은 모두 무균 처리된 일회용품으로, 한 번 사용한 후 즉각 폐기하기 때문이다.
헌혈이 빈혈을 유발하거나, 건강에 안 좋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두 사실과 다른 억측이다. 우리 몸속 혈액량의 15%는 비상시를 대비한 여유분이다. 헌혈을 하더라도 충분히 쉬면 하루 이틀 뒤 새 피가 만들어져 혈액량이 원상회복된다. 또 헌혈 전 혈액량이 충분한지 검사하기 때문에 헌혈로 인한 빈혈 우려는 거의 없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아직까지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거나 대체할 수 없다”며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안정적인 혈액 수급을 위해서는 중장년층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