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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소영]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이유

입력 | 2019-01-17 03:00:00

과학계 전문연구요원 존속 요구, 특혜 바라는 집단이기주의 아냐
현대戰서 단순 병력 숫자는 무의미… 국방 위해 반드시 총 들 필요 없어
이공계 인력, 연구실에 남기는 게 인적자원 효율적 활용에 바람직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은 대개 의사가 제 병 못 고치는 것처럼 다른 사람 문제는 해결해 주면서 정작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일은 젬병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요즘 사법농단이나 스포츠계 ‘미투(MeToo)’ 사태에서 보듯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것처럼 당사자 이해관계가 걸린 일은 당사자가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과학기술계에서 이 속담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슈가 전문연구요원제도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어 아시아경기 대표팀 선발 논란, 병역특례요원 복무 중이던 국가대표 선수의 봉사활동 조작 사태까지 터지며 그 어느 때보다 병역대체복무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과학기술계도 2016년 5월 국방부의 전문연구요원제도 전격 폐지 방침 발표로 대체복무 논란을 한바탕 치른 적이 있다.

전문연구요원제도의 연혁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의무복무기간을 5년으로 해 한국과학기술원 및 방위산업체 종사자들에게 도입한 특례보충역이 그 전신이다. 이듬해 기간사업체 종사자가 추가되고 1981년 자연계 대학과 기업 부설 연구소로 확대됐다. 1989년 유사 특례 분야 통폐합으로 연구요원과 기능요원이 분리됐고, 1993년 이 제도가 병역법에 흡수되면서 각각 전문연구요원과 산업기능요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현재 복무기간은 36개월로 육군의 21개월에 비해 3분의 1 정도 길다. 2020년 11월 입대자부터 육군은 18개월로 줄어든다니 그 즈음에는 전문연구요원 복무기간이 두 배가 된다.

2016년 전문연구요원 폐지 논란 때 과학기술계는 거의 한목소리로 폐지를 반대했다. 황우석 사태 폭로의 진원지였던 온라인 과학커뮤니티 ‘브릭(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서 긴급 과학기술인 설문을 실시했는데, 딱 사흘 동안 실시한 설문에 무려 4200여 명이 응답했다. 평소 과학기술 관련 설문 응답이 200∼300명 수준임을 감안할 때 엄청난 반응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120쪽의 설문 결과 보고서 중 110쪽이 주관식 설문 응답으로 채워진 것이다.

당시 온라인 댓글 중에는 “세종대왕님은 노비를 과학자로 만들었는데 ‘헬조선’은 과학자를 노비로 만든다”면서 중이 제 머리를 못 깎기에 (전문연구요원제도의 대표적 수혜자인) “카이스트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계정으로 쓴 글도 있다.

전문연구요원제도 존속에 대한 이 같은 목소리는 병역 의무의 형평성을 간과한 과학기술계의 집단이기주의인가? 아니면 지난 수십 년간 국가산업 기여를 미명으로 유학도 가고 다른 분야에서 돈도 더 벌 수 있었던 인재들을 이공계에 끌어들였지만 이제는 이공계도 변변치 않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전문연구요원제도를 둘러싼 이슈는 복잡하고 미묘해서 이 지면에서 자세히 다루기가 힘들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두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스님은 자기 머리보다 남의 머리를 더 잘 깎기 때문이다. 병역법 제2조는 전문연구요원을 ‘학문과 기술의 연구를 위해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되어 해당 전문 분야의 연구 업무’에 복무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군복무자로서 전문연구요원은 말하자면 자기 머리를 깎는 일(총을 드는 것)보다 남의 머리(연구개발)를 더 잘 깎는 군인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스님이 자기 머리를 깎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걸프전 당시 100만 대군을 거느린 이라크는 항공 전력과 첨단 무기를 앞세운 연합군에 100시간 만에 초토화됐다. 현대전에서 단순한 병력 숫자는 무의미하다. 총만 들 필요가 없을뿐더러 총만 열심히 들어서 국방과 안보가 보장되는 게 아니다.

이공계 대학원생이라고 아무나 전문연구요원을 하는 게 아니다. 잡음이 있지만 모종의 선발 절차를 거쳐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된다. 수만 명의 이공계 대학원생 중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되는 규모는 1000명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인적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활용이라는 관점에서 과연 이들을 연구실 밖으로 불러내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오히려 이공계만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재들을 위해 기회를 더 확대해야 하지 않을까.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