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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철희]김일성 둘째부인 김성애 사망

입력 | 2018-12-14 03:00:00


사흘 뒤면 사망 7주기를 맞는 북한 김정일은 생전에 스스로를 ‘난쟁이 똥자루’라고 비하하는 농담도 쉽게 했다지만, 그건 권력 중심에 선 승자로서의 여유였을 것이다. 김정일은 평생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그 근저에는 이복동생 김평일(현 체코 대사)에 대한 질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김평일은 김정일보다 열세 살이나 어렸지만 고교 시절에 이미 180cm가량의 당당한 체격으로 아버지 김일성이 자신을 꼭 닮았다고 자랑한 ‘장군감’이었다.


▷김정일과 김평일은 각각 생모 김정숙과 김성애를 닮았다.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 시절 결혼한 김정숙은 몸집이 작고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김정일은 주변에서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닮았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반면 김일성의 비서 출신으로 둘째 부인이 된 김성애는 늘씬하게 키가 컸고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귀엽고 애교가 있다는 평을 들었다. 김정일로선 그런 계모가 자신에게 아무리 살갑게 대해도 태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성애는 1970년대 초 김정일이 후계자 자리를 굳히기 위해 넘어서야 할 최대 라이벌이었다. 당시 김성애는 여성동맹위원장이란 직함 이상의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가정집에 김일성과 함께 김성애의 초상화가 걸리고 ‘김성애 여사께서는’이란 존칭으로 활동 소식이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일을 견제하려 권력 핵심에 친척들을 앉히는 등 전횡을 부린 데다 빨치산 세대를 적으로 돌리는 실수까지 범하면서 김일성의 신뢰를 잃고 추락하고 만다.

▷김성애는 1994년 북핵 위기 때 평양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를 대접하는 대동강 뱃놀이에 김일성과 함께 나타난 이후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당시 카터는 미군 유해 송환을 요구했는데, 김성애가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고 한다. 순전히 의전상 동석한 김성애가 실권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일종의 연기를 했다는 게 정설이다. 어떻든 북한의 퍼스트레이디였던 김성애가 사망했다고 한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권력투쟁의 패자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부고 한 장 없이 지워질 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