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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공동체를 위한 희생 ‘칼레의 시민’

입력 | 2018-12-12 03:00:00


“모든 칼레 시민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오랫동안 잉글랜드군에 저항한 책임을 물어 도시를 대표하는 시민 6명을 죽이도록 하겠다. 너희 스스로 그 6명을 뽑고, 그 6명은 자신이 목을 매달 밧줄을 목에 걸고 내가 입성할 성문 열쇠를 들고 나오도록 하라.”

14∼15세기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당시 칼레를 점령한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의 서슬 퍼런 포고문입니다. 수많은 부유층과 고위 관료들이 죽음을 자초하고 나섰고 그중 6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공동체를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인해 칼레 시민들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칼레는 도버해협에 접해 있는 프랑스 북부의 작은 도시입니다. 그곳에 ‘칼레의 시민’(1889년)이라는 유명한 조각상이 있습니다. 6명의 영웅적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 만든 청동 작품입니다. 이 조각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와 딜레마로 고민하고 있는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집니다.

세금 문제로 온통 시끄럽습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들의 시위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17일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촉발된 시위는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돼 연인원 수십만 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위대는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부활, 연금 축소 반대, 대입제도 개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크롱 정부는 환경오염 방지 명분으로 지난 1년간 경유값을 23%, 휘발유값을 15% 올렸습니다. 시민들은 마크롱 정부가 기업에 세금은 깎아주면서 서민들에게만 세금 부담을 지운다고 불만입니다. 날로 커져가는 빈부 격차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듯합니다. 세금 문제는 이렇게 민감한 사안입니다.

중국에서는 유명 배우 판빙빙의 탈세 사건이 드러났습니다. 한때 감금설, 사망설, 해외 망명설이 돌던 판빙빙이 얼마 전 세금 탈루에 대해 공식 사과하며 벌금과 체납 세금 등 1483억 원을 납부했습니다. 세무 당국이 연예계에 대한 대대적 세무조사 움직임을 보이자 장쯔이, 쑨리, 우징 등 중국 톱스타들의 자진 납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중계약을 한 후 실제보다 훨씬 적은 금액의 계약서를 세무당국에 제출하는 수법으로 탈세를 해온 중국 연예인들의 관행이 사라질지 지켜볼 일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최근 국세청은 2억 원 이상 고액 상습 체납자가 5만5000여 명이며 이들 가운데 약 20%는 고의로 재산을 숨기고 있는 악성 탈세자라고 발표했습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기동팀이 지난달 26일 체납액을 징수하기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가택 수색에 실패하고 발길을 돌렸다고 합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방세 9억8000만 원, 국세 21억 원가량을 체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의무보다 권리를 앞세우고 공동체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세태에 칼레의 영웅들은 뭐라고 말할까요. 1979년 12월 12일은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며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항변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전 전 대통령이 군사반란을 일으킨 날입니다. 처절한 반성은커녕 변명과 구실을 찾아 움츠리는 전직 대통령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의무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품격이나마 기대하고 싶은 것이 소시민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