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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신윤순]정부가 강제징용 유족 목소리 직접 들어야

입력 | 2018-12-10 03:00:00


신윤순 사할린 유족·사할린강제동원억류피해자유족회장

10월 말에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서 승소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를 보면서 참으로 부러웠다. 며칠 전 총리가 같이 식사를 했다는 이들의 명단에 유족이나 피해자가 아는 이름이 한 사람도 없다. 우리와 만난 적도 없는 이들이다. 그 식사 자리에서 정부 차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하는 재단을 만드는 내용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재단 설립은 시급한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단이 아니라 피해 사실을 입증하고 위로금을 주는 역할을 하는 정부다. 얼마 전 강제징용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건강보험 자료를 새로 찾아냈다는 언론 보도를 봤다. 더 많은 자료가 일본에 있다고 한다. 이런 자료를 가져오는 일이 더 시급하다.

2004년 11월에 문을 열었다가 2015년 12월에 문을 닫은 국무총리 소속 강제동원위원회(당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필요하다. 당시 정부는 ‘위원회보다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일하겠다’고 국회에서 약속했다. 업무를 인계받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법 타령을 하면서 피해 신고를 받고 지원금 신청을 받고, 자료를 가져오는 등의 일은 하지 않는다.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한 70대 일제 강제동원 피해 유족이다. 17세 된 어머니를 남겨두고 사할린으로 징용을 간 아버지는 지금까지 생사조차 모른다. 90이 넘은 어머니는 매일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 사망기록을 확인하고 유해나마 어머니 품에 안겨드리는 것이 내 큰 소망이다.

그나마 나는 위원회를 통해 아버지 이름이 있는 왜정시피징용자명부도 알게 되고 위로금도 받았다. 그러나 아직 위로금 신청조차 하지 못한 피해 유족들이 계신다. 아직 피해자의 1%도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사할린 피해자들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영주 귀국한 사할린 유족들은 지원금을 신청할 수도 없다. 유골도 민간단체가 봉환해 오겠다고 나서고 있다. 모두 정부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다. 연구와 교육사업을 한다는 재단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이런 실정이나 유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늙고 힘없는 유족들이 행안부에 가서 호소하지만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새로운 재단을 만드는 일에 앞서 정부는 유족들을 당당하게 만들어 달라. 강제징용 업무를 할 공무원 수를 늘리려거든 강제징용 유족들의 의견을 듣고 필요한 업무를 할 공무원을 배치해 달라.
 
신윤순 사할린 유족·사할린강제동원억류피해자유족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