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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같은데…탄력 받는 日징용 vs 첫발도 못뗀 위안부

입력 | 2018-11-10 13:37:00


최근 대법원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 손을 들어줌에 따라 계류해 있던 소송이 하나둘 속도를 내며 진행되고 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제기된 위안부 소송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소송 대상 기업과 국가에서 차이가 나면서 이런 간극이 생기고 있다.

1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2부(부장판사 김한성)는 지난 8일 강제징용 피해자 김모(사망)씨 유족 3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1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2년여전 사건이 접수되고 3차례 연기된 끝에 진행된 첫 변론기일이다. 재판부는 이날 유족 측 대리인과 신일철주금 측 대리인의 의견을 들었고, 오는 29일 오후 2시에 선고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사건이 접수된 위안부 피해자 곽예남씨 외 19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1차 변론기일이 5차례 연기된 끝에 오는 28일 처음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날 강제징용 사건과 같이 양측의 의견을 듣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곽씨 측 대리인 법무법인 김세은 변호사는 “지난해 8월 재판부에서 앞으로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의견을 듣겠다며 기일을 잡은 적이 있었지만 일본국 측은 나오지 않았다”며 “일본국에서 송달을 거부하고 있어서 오는 28일에도 재판부에서 현재 상황을 전달하고 의견을 듣는 정도로 진행될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위안부 할머니 배춘희(사망)씨 외 11명이 일본국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사건이 접수된 지 3년이 다 돼가지만 단 한 차례도 심리가 열리지 않았다.
강제징용 소송과 위안부 소송이 속도차를 보이는 이유는 소송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소송 대상은 일본 기업이지만, 위안부 소송 대상은 일본 국가다.

강제징용 소송은 소장이 일본 기업에 송달됐지만, 위안부 소송은 소장이 일본 정부에 송달되지 못했다. 송달은 소송 당사자나 그 밖의 소송관계인에게 소송에 관련된 서류를 법정 형식에 따라서 전달하는 행위다. 민사소송법상 피고에게 소송 사실이 알려져야만 재판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송달이 되지 않으면 재판은 진행될 수 없다.

강제징용 소송은 송달 절차에서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해도 기업이 송달 자체를 거부하지는 못해 재판 진행이 가능하다. 외국 법인이라도 타국 국민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경우 국가가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위안부 소송은 일본 정부의 거부로 송달 자체가 전달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소송이 헤이그송달협약 13조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한국 법원이 제기한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6월께 일본 정부는 배씨 소송 관련 준비서면을 “한국 법원의 재판관할권이 자국에 미칠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 지난해 4월께는 법원행정처가 곽씨 소송 관련 소장을 발송했지만, 일본 정부는 접수조차 하지 않은 채 반송했다.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크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위안부 소송이 진행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대법원 판결 직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기자들에게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며 반발했고, 일본 정부도 연일 국제법 위반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주권침해를 이유로 송달 자체를 거부했다”면서 “지난 9월께 외교부를 통해 사법공조촉탁서류를 보냈는데 실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