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논설위원
고용주를 벌금 2000만 원 혹은 징역 2년까지 살리는 한이 있더라도 정부가 주 52시간 이상 일을 못 시키게 한다니 근로자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안한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만들어주면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 그 이상의 은혜가 없을 것이다.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매달 봉급을 30%씩 더 준다면 작은 복권에 당첨된 기분일 것이다. 국내 3위 그룹인 SK그룹 본사 정문 농성장에 걸린 플래카드에 ‘이놈들아, 우리들이 연대하면 니들 다 죽는다’는 문구는 현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으로 여기는 노조의 자부심과 위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자신의 주요 지지자들에게 초점을 맞춰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펴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요즘 미국은 중간선거를 보름 앞두고 유세전이 한창이다. 가장 최근 조사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7% 정도다.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50∼57%로 일반 직무 지지율보다 훨씬 더 높다. “중국의 값싼 물건들이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선동적 발언들이 지지자들에게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여기에 조만간 중산층 10% 감세안을 내놓겠다며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민주주의(Democracy)의 적으로 항상 골칫거리로 지적돼온 중우정치(Ochlocracy)는 최근 인터넷, 소셜미디어의 보급과 함께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총집합한 세계 경제학계·재계 겨물들은 이구동성으로 향후 세계 경제의 최대 위협요소로 포퓰리즘으로 꼽았다. 말하자면 세계는 지금, 포퓰리즘 전성시대다.
몇몇 국가는 정말 막장 수준이다. 그리스는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 네댓 명 중 1명이 공무원이다. 이들의 생산성 없는 봉급과 연금이 8년 전 그리스를 구제금융을 받는 국가로 전락시킨 주범이었다. 이제 구제금융을 벗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총리는 다시 공무원 봉급인상, 최저임금 인상, 연금 회복을 외치고 있다. 이탈리아의 집권 포퓰리즘 연합정당인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경쟁하듯 소득세 최고세율을 40%에서 20%로 한꺼번에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하고 동시에 저소득층 기본소득을 왕창 올려주겠다며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경제정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게 숱한 역사적 경험이다. 지금 달콤하겠지만 결코 공짜가 아니다. 나라별로 시대별로 보복의 시차와 경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