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천국’ 옛말… 가입률 10.8%로 뚝
프랑스의 7개 강성 노조 주도로 9일 파리에서 열린 반정부 거리 시위에 참가한 시위대들. 프랑스 최대 강성노조 노동총동맹(CGT)은 이 시위에 5만 명이 모였다고 발표했지만 프랑스 매체들이 추산한 수는 절반도 안 되는 2만1500명이었다. 사진 출처 르피가로 홈페이지
프랑스 최고 강성 노조로 꼽히는 노동총동맹(CGT)의 필리프 마르티네즈 위원장은 최근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반정부 거리 시위 참가자 수가 초라한 수준으로 줄어든 현실에 대해 언급했다.
9일 CGT를 포함한 7개 노조는 대규모 홍보전까지 벌여가며 반정부 시위를 기획했다. 하지만 파리14구 몽파르나스에서 13구 이탈리 광장까지 이어지는 거리 행진에 참가한 사람은 2만1500명에 불과했다. 6월 집회 때도 1만5000명이 모인 게 전부였다.
○ 젊은층에 외면당하는 노조
특히 젊은층의 노조 외면 현상이 뚜렷하다. 노조 가입률이 가장 높은 연령은 50세 이상(14.6%)이다. 40대(13.0%)와 30대(9.2%)로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가입률도 떨어지다가 20대(3.6%)에서는 5% 아래까지 내려갔다. 계층별로 보면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이 9.6%에 그쳐 간부(11.0%)나 중간관리자(12.1%)보다 오히려 낮았다.
1949년 30.1%에 달하던 노조 가입률은 2000년대 들어서는 10% 안팎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노조 가입률이 11%로 잠시 올랐지만 이번 통계에서 다시 하락으로 돌아섰다.
프랑스 언론들은 하락한 노조 가입률이 반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누적된 패배감을 꼽고 있다.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부터 좌파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 중도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의 집권 세력들은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일관되게 노동시장 유연화와 친기업, 공공개혁 정책을 펴고 있다. 강성 노조 때문에 기업 경영과 투자 유치가 힘들어졌고 이 때문에 이웃 국가 독일이나 영국에 비해 실업률이 높고 경제성장이 더뎌졌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도 이런 진단에 호응하면서 ‘사회 연대’를 강조하는 노조들은 고립되는 분위기다. 마크롱 정부는 권위주의적인 국정 스타일 탓에 지지율은 낮지만 개혁에 대한 여론 지지는 여전히 높다. 여론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노조는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인데 좌우 진영 구분 없이 정부가 강한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든 목소리 큰 노조가 자초한 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마르티네즈 위원장은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그들(정부)에게 영향을 미칠 능력이 있는지 회의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관행적으로 거리로만 뛰쳐나오는 게 노조의 동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CGT는 지난해 5월 마크롱 정부 출범 이후 반정부 시위를 무려 12번이나 진행했다. 반정부 시위 참가자 수는 지난해 9월 12일 22만3000명에 이르렀으나 9일 뒤인 9월 21일에는 13만2000명, 한 달 뒤인 10월에는 3만8000명으로 줄어들었고 이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렇다 보니 반정부 거리 시위에서 노조의 이탈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9일 대규모 시위에는 CGT와 함께 프랑스 양대 노조인 민주노동총동맹(CFDT)을 포함해 프랑스기독교노동자조합(CFTC), 프랑스관리직총동맹(CFE-CGC) 등이 시위에 불참했다. 5월 1일 노동절에도 이들은 거리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큰 노조인 노동자의힘(FO)의 경우 신임 위원장이 정부와의 대화에 의지를 보인 전임 위원장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전·현직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와 강경파가 내부 분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노조 측에서는 정규직보다 임시직이 많아진 것도 노동자들의 참여가 저조해진 이유로 들고 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