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노후 대책으로 재소자가 되는 할머니 이야기는 복지국가 스웨덴에서는 유쾌한 소설이지만 세계 최고령국 일본에서는 비참한 현실이다. 블룸버그는 올 3월 ‘일본 교도소는 여성 노인들의 천국’이라는 특집을 보도했다. 고령인구 증가로 노인 범죄율이 높아가고 있는데 특히 여성 노인들의 범죄율 증가세가 두드러진다는 내용이었다.
평생 착하게 살아온 여성들이 노년에 교도소 담장을 제 발로 넘게 된 사연에는 여러 가지 여성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남자보다 가난하고, 남자보다 수명이 길어 외롭게 혼자 사는 기간이 길며, 가부장적 문화에 따른 소외감에 힘들어한다. “여기서 나가면 혼자서 하루 1000엔으로 살아야 한다. 기댈 곳이 없다”(74세·3범·콜라와 주스 절도), “열심히 살았지만 늘 가난했고 아들 대학을 보내야 했다. 6년 전 쓰러진 남편 병 수발을 드느라 지쳤다. 여기가 편하고 여기선 내 삶을 살 수 있다”(80세·4범·프라이팬 훔쳐 2년 6개월 징역형), “늘 외로웠다. 13년 전 서점에서 소설책을 훔치다 걸렸는데 경찰이 얼마나 친절하던지, 내 푸념을 다 들어줬다.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80세·3범·크로켓과 부채 훔쳐 3년 2개월).
범행 이유를 알 순 없지만 가난하고 외로운 건 일본 할머니들과 같다. 65세 이상 여성의 연간 총소득은 632만 원. 남성(1417만 원)의 절반도 안 된다(통계청, 2014년 기준). 70세 이상 1인가구 비율은 여성이 29.3%, 남성이 7.9%(2018년 추계)다. 평균 기대수명이 남자보다 6년 길고 남녀 간 결혼 나이 차이를 감안하면 여성은 약 10년간을 혼자 살아야 한다. “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과 결혼생활 만족도는 남성이 높고,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호소하는 비율은 여성이 높다(‘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의 노인 강도단은 어렵게 들어간 교도소 생활에 실망하고 출소 후엔 꿈의 요양원을 짓기 위해 카지노와 은행을 턴다. 현실 속 한국과 일본 할머니들의 재범 비율도 높다. 하지만 그건 소설처럼 ‘건설적’인 목표 때문이 아니다. 그저 다시 갇히고 싶어서다. 메르타 할머니 말대로 “황혼기를 맞은 노인들이 강도가 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면, 그 사회는 분명 뭔가 잘못된 사회임에 틀림없다”. 배고픈 자유와 배부른 구속 사이에서 고민하는 노인이 없도록 외롭고 가난한 노인, 특히 더 외롭고 더욱 가난한 여성 노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