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논설위원
올해 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원 지사가 이 사업을 공론에 부친다고 할 때 이미 개업허가는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개는 공론화 혹은 여론조사로 의사결정을 하면 고급화, 차별화보다는 평준화 성향이 수적으로 우세한 경우가 많고 영리병원 역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7월 열렸던 공개토론회에서 한 시민단체 대표는 “영리병원은 수익을 내야 해 진료 인력을 줄이고 진료시간도 짧아지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데도 의료의 질이 낮아진다”고 반대 논리를 폈다. 심각한 정신질환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떤 환자가 이런 병원에 제 발로 찾아가겠으며 병원이 이익을 남길 수 있겠는가. 그래도 표가 달려 있는데 선거를 코앞에 둔 정치인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영리병원이란 용어부터가 이상야릇한 이름이다. 무료 보건소를 빼고는 동네 병원에서 서울 강남 성형외과, 대형 대학병원에 이르기까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병원이 별달리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돈 많은 사람이 자기 돈 많이 내고서라도 보건복지부로부터 일일이 간섭당하는 일반 병원에서는 받을 수 없는 고급 의료 서비스를 건강보험에 관계없이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 영리병원의 요체다. 이런 서비스 도입이 어려워졌으니 중국, 중동 지역 국가의 부유층들이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한국에 와서 돈을 쓰고 갈 일도 없게 됐다. 의료 서비스 수출 기회는 물론이고 투자 유치하고 사업승인까지 내주고도 마지막에 사업을 좌절시킨 한국은 해외 투자 업계에서 신뢰까지 상실했다.
엊그제 발표된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뉴욕대 교수는 도시화와 집값 상승에 대해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택 수요가 늘어나는데 공급이 증가하지 않으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라면서 “그냥 시장에 맡기면 수요공급원칙에 따라 스스로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노벨상 수상자치고는 너무 단순하고 뻔한 말 같지만 경험적으로도 그만한 해답이 없다.
배고픈 것도 배 아픈 것도 동시에 모두 해소할 수 있으면 그보다 좋은 정책은 없다. 그렇지 않으니까 늘 문제다. 그럴 때는 미래 세대를 먼저 생각하고 정부의 신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