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
독일에서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던 허수경 시인이 3일 별세했다. 향년 54세.
출판사 난다의 김민정 대표는 4일 “허수경 시인이 한국시간 어제(3일) 저녁 7시50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경남 진주 출신인 허 시인은 1987년 문학계간지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이후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뒤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갔다.
그는 “아버지가 한 5년간 암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다. 그러자 아버지를 치료하는 의무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다보니까 굉장한 허탈감 같은 것이 들더라”라며 “5년 동안 아버지이시기도 하니까 너무 걱정도 많이 됐다. 그때는 글로 돈이 될만한 일들은 다 하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러다보니까 제가 저를 너무 많이 소모한 것 같은 허탈감 같은 것이 들면서 한 2년 정도 외국에 가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언어를 접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시작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로 건너간 허 시인은 뮌스터대학에서 고대동방고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고고학이)굉장히 좀 낭만적으로 보이고 멋져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때는 고고학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이라는 책이 있는데, 아주 신비롭고 재미나 보이더라. 그래서 ‘아, 이걸 한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허 시인은 독일에서도 꾸준히 문학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등의 시집을 냈다. 또한 수필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 ‘모래도시를 찾아서’ 등도 펴냈다.
허 시인은 지난 8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새롭게 편집해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당시 김민정 대표는 “지난 2월 허 시인이 말기 암을 앓고 있다고 알려오면서 단단한 당부가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세상에 뿌려놓은 글 가운데 손길이 다시 닿았으면 하는 책들을 모아 빛을 쏘여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