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산업1부 차장
한국 금형 회사도 그런 부품을 만들 수 있을까. 박순황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 이사장에게 물어봤다. “쉽지 않다. 일정하게 8nm 틈이 있도록 표면을 가공하려면 작업장 내 진동이 전혀 없어야 한다. 옆에 도로가 있어 차량이 지나가도 안 된다. 온도와 습도 관리도 해야 하고, 설비에서 열이 나서도 안 된다. 기술력 또한 매우 높아야 한다.”
아직까지 한국과 일본의 기술력 격차는 존재한다. 본보가 최근 연재를 끝낸 ‘한국 제조업 골든타임을 지켜라’ 시리즈에 따르면 기계산업 경쟁력의 경우 일본이 한국보다 2∼4년 정도 앞서 있다. 한국은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에서 283억 달러(약 31조5800억 원) 적자였는데, 주요 적자 품목은 부품소재 등 기계산업 중간재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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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계 관련 조합들은 부단히 해법을 찾았다. 부품소재 경쟁력 강화 방안, 부품소재 국산화 대책, 부품소재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뿌리산업 지원센터’….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아직도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일본 특유의 문화, 일본산 초정밀 부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와 이에 따른 기술 개발 등은 일본 기계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반면에 한국 중소기업은 일본과 유사 제품을 만들어내더라도 시장에서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기업이 허다하다.
기자는 한일 격차 이유에 ‘손끝’ 경쟁력 차이를 추가하고 싶다. 우에다 오가키정공 사장은 “초정밀 기술은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다. 우리 회사는 그런 기술자를 존중한다. 정년이 됐다고 내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가키정공에는 220명의 직원이 있는데, 당시 65세를 넘은 직원이 8명이었다. 따로 정년이 없기 때문에 70세 넘어서도 일할 수 있다.
우에다 사장은 일본 내외 기업들에 작업 현장을 공개했다. 경쟁사인 한국 금형 중소기업으로부터 연수생을 받기도 했다. ‘기술을 도용당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끝이 익힌 기술은 한두 달 연수한다고 배울 수 없다. 수십 년 일하며 체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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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 세계가 인공지능(AI) 열풍에 빠져 있다. AI가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것이란 우려도 크다. 하지만 한길을 수십 년 동안 파 손끝이 정밀 기술을 익히게 되면 AI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년 연장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