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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트럼프 리스크’에도 한국 외교 딛고 설 땅은 韓美관계

입력 | 2018-09-27 00:00:00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만났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다섯 번째 한미 정상회담이다. 이번 회담은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잡힌 것이지만, 한미의 핵심 현안인 북한 문제에 대해 어느 때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을 것이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 직후여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생생한 속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는 문 대통령의 ‘중매’로 다시 궤도에 올랐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공식화한 것도 그 성과다. 흡사 문 대통령은 ‘굿캅’, 트럼프는 ‘배드캅’의 역할 분담을 하면서 김정은을 비핵화 열차에 태우려는 형국이다.

물론 한국은 굿 캅, 미국은 배드 캅으로 나뉜 밑바닥엔 근본적인 시각차가 엄존한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고, ‘유관국 참관 아래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을 폐기한다’고 약속한 것을 실질적인 비핵화의 진전으로 본다. 그러나 미 정부는 핵실험장 폐기나 미사일 시험장 폐기 약속은 ‘쇼’나 ‘말’에 불과하다고 인식한다. 이번 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조기에 종전(終戰)선언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확답하지 않은 것도 그런 시각차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돈 문제까지 개입되면 시각차는 더욱 커지는 게 트럼프 집권 이후 상황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이례적으로 한미 방위비 분담금 논의까지 이뤄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리는 것은 물론 미국의 대한(對韓) 핵우산 관련 비용에 대해서도 이전에 없던 요구를 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연설에서까지 ‘미국 우선주의’를 ‘주권(主權)’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식 유아독존(唯我獨尊) 때문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다. 이번에 한미 정상이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한 것도 트럼프 리스크의 파장이다. 이번 협정 서명으로 양국간 무역 분쟁은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관세폭탄을 터뜨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문 대통령이 직접 트럼프에게 면제를 요청했으나 미국의 통상 안보가 위협받을 때 적용하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한국은 적용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개발해 미국 조야(朝野)를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까지는 북핵보다 경제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과 유엔 연설에서까지 미 경제 호황에 대한 자찬을 늘어놓을 정도다. 트럼프 리스크에 한미 관계가 다소 삐걱대도 두 나라는 70년 가까운 혈맹관계를 유지해왔다. 미국은 대통령 한 사람의 마음대로 굴러가는 나라도 아니다. 지금은 북-미 관계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는 문 대통령도 이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한미 동맹이 우리 안보의 보루인 점을 돌아볼 때 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최종적인 선택의 기준이 미국과 북한 중 어느 쪽이어야 할지는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