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학력자 실업률 42%에 달해 일자리, 자녀교육 위해 이웃나라 터키로 이민 행렬
‘터키에 집을 사는 방법’
페르시아어(이란 공용어)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이 같은 검색어를 넣으면 수십 개의 페이지가 나타난다. 터키에서 부동산을 사거나 거주 비자를 손쉽게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주겠다는 광고들이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자 아예 해외로 ‘탈출’을 결심하는 이란 젊은층이 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란에서 나고 자란 다루시 모자파리 씨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부모의 만류를 무릅쓰고 터키 이민을 준비 중이다.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는 10년 가까이 저축한 돈을 밑천삼아 터키에서 새 삶을 꾸릴 생각이다. 지난달 시작된 미국의 대(對)이란 1차 경제제재가 그의 계획을 앞당겼다. 그는 “며칠 사이 저축한 돈의 가치가 절반 가까이 떨어진 것 같다. 더 경제 상황이 나빠지기 전 터키로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11월 5일이면 이란 원유, 에너지 사업 관련 거래 제재가 담긴 미국의 2차 경제 제재가 시작된다.
이란 경제의 허리가 돼야 할 젊은 세대 사이에서 ‘탈(脫)이란’ 바람이 불고 있다. 대부분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가 목적지다. 터키의 이스탄불이나 안탈리아, 알라니아 등 주로 해안 도시들이 인기다. 이민 상담사 모센 아카르네자드는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하면서 이란 내 경제 불안감이 높아지기 시작한 최근 4개월 사이 해외이주 상담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대부분 터키를 제2의 고향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중동 언론들은 이 같은 탈이란 바람이 특히 젊은 세대 고학력자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해 이란 내 실업자 수는 약 320만여 명. 이란 노동부 보고서에 따르면 이 중 고학력자 실업률이 42%에 달한다. 대학 교육까지 마친 이들이 이란에서 만족할 만한 직장을 구할 수 없으니 아예 이민을 결심한다는 뜻이다. 이란 의회는 지난달 실업률 급증 및 경제위기 등을 문제 삼아 노동부 장관과 경제부 장관을 차례로 해임했다.
테헤란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란-터키 상공회의소의 레자 카미 회장은 “봄부터 이란 사람들이 터키 내에서 매매한 주택이나 아파트 수만 1000여 채에 이른다”라며 “대부분 5만~20만 달러(5600만~2억2000만 원) 사이 가격대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터키 현지에서는 이민자들 상당수가 투자보다는 거주를 목적으로 하고, 부유층보다는 서민층이 많다고 분석하고 있다. 터키 내 부동산을 구입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거주 허가를 받기 쉬운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 이민 관련 회사 ASAM은 “6개월 사이 터키로 이민 온 이란 사람들이 (예년에 비해) 약 25% 정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터키 역시 최근 미국과 외교 마찰로 경제 위기에 처했기는 마찬가지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올해 들어 40% 가까이 떨어졌고, 지난달 물가상승률(17.9%)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럽계 은행들로부터 많은 돈을 빌리는 등 기초체력이 가뜩이나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터키 정부에 대한 신뢰도마저 낮아지며 외국 투자 자본이 떠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심하게는 막대한 외화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터키 경제가 부도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이란 사람들의 터키 이주 러시를 막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단순히 일자리나 안정자산에 대한 투자가 이민의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자녀에게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주고, 졸업 후 유럽이나 캐나다 등으로 제 2의 이민을 떠날 수 있는 ‘징검다리’로 터키를 활용하겠다는 이란 부모들이 많다.
앙카라 대학 역사학과에 재학 중인 알리 씨 역시 이란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의 지원으로 터키로 유학을 왔다. 수년 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을 봐온 알리 씨의 부모가 먼저 유학을 제안했다. 그녀는 “이란에는 실업자가 너무 많고 졸업 후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다”라며 “이란은 교육의 질도 좋지 않고, 종교·정치적 압박도 많다. 반면 터키에서는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카이로=서동일특파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