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 골든타임 지켜라]8대 주력산업 점검<7>철강
한국 철강업계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국내 주요 철강사 22곳 중 포스코를 제외한 나머지 21곳의 상반기 평균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0%나 줄었다.
○ 해외선 美中 압박, 국내선 생존경쟁
한국 내수시장에서도 2010∼2013년 사이 10% 후반대였던 중국산 철강 점유율이 2014년에는 24%를 넘어섰다. 지난해는 20%로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위협적이다.
최근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상처를 입고 내수경기가 둔화될 조짐이 보이자 철강업계는 다시 긴장하고 있다. 중국이 경기침체 탓에 내부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을 다시 해외로 밀어낼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중국의 과잉공급은 세계 철강업계에서 시한폭탄 같은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유정용 강관을 주로 생산하는 중견업체 넥스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동한 수입제한 조치로 대미(對美) 수출 물량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었다. 이 회사는 수출의 90%를 미국에 의존해 왔다. 넥스틸 관계자는 “공장 가동률은 전성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생산인력을 교육 등에 투입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는 포항의 생산라인 일부를 미국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미국 내 부지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대형 철강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엄연히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정상 가격이 있는데 자신들에게만 싸게 달라는 것은 특혜 요구”라고 반박했다. 그는 “설령 그렇게 해줘도 나중에 불공정거래 시비가 일거나 미국 등 다른 수출 대상국들이 항의성 보복 조치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혁신 속도에서도 앞서나가는 중국
이런 가운데 ‘혁신’ 속도에서도 한국은 중국에 뒤처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 최대 철강사 바오우강철 회장에 취임한 마궈창은 기존 철강업계에 없었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철강, 금융, 온라인 플랫폼을 결합시킨 것이다. 바오우는 우선 온라인 철강거래 플랫폼 ‘어우예윈상(歐冶云商·Ouyeel)’을 만들었다. 누구나 여기서 철강 제품을 사고팔 수 있다. 이어 어우예윈상 이용자들에게 대출과 유사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자도 받았다.
국내 철강사 관계자는 “바오우는 전 세계 고객사의 금융 및 구매 제품 관련 빅데이터를 수집해 자신들의 제품 생산, 연구개발(R&D), 판매에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자수익은 R&D에 투자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융합산업은 등장할 수 없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금산분리 때문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어우예윈상의 온라인 거래 규모가 앞으로 연간 2억 t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억 t이면 한국의 4년 치 철강 내수소비량과 맞먹는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한국이 기껏해야 더 좋은 철강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수준이라면 중국은 아예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