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과 청소년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였던 1980, 90년대 전자오락실.
2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디지털 매장에 진열된 키보드가 지나가는 손님들의 손가락을 부르더니 투박한 타자음을 낸다. 1980, 90년대 구식 타자기처럼 생긴 동그란 자판키가 특징인 ‘레트로 키보드’는 접이식 또는 두루마리 키보드와 같은 최신 제품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매장 직원은 “남녀노소 고루 찾지만 특히 20, 30대 젊은 여성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과 아날로그를 접목한 ‘레트로(Retro·복고) 디지털’이 디자인과 콘텐츠를 넘나드는 전방위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레트로는 ‘레트로스펙트(Retrospect·회상)’의 줄임말로, 과거나 전통을 그리워해 따라 하려는 풍조를 말한다. 3년 전 패션업계에서 주목받은 복고풍이 냉장고, 전자레인지, 정수기 등 부엌 가전을 넘어 젊은층이 주로 쓰는 IT 주변기기와 게임 콘텐츠로 외연이 확장됐다.
‘테트리스’ 등 고전 게임의 향수를 못 잊은 30, 40대들이 자녀들과 함께 즐길 놀이수단으로 레트로 게임기를 찾고 있다. 동아일보DB
주목할 점은 IT 레트로 열풍에서 보이는 ‘세대 간 전이’ 현상이다. 전통적인 레트로 향유층은 옛것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였지만 이들이 자기만이 아닌 자녀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가 되고 있다.
타자기를 닮은 디자인으로 20, 30대 여성 고객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블루투스 키보드. 무아스 제공
젊은층의 자생적인 관심도 심상찮다. 1990년대 문화를 보여주며 히트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7080 노래를 젊은 가수가 재해석해 부르는 ‘불후의 명곡’ 등 TV 프로그램을 통한 레트로 간접 체험이 젊은 세대의 관심을 넓혔다는 분석이다.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소비자분석연구소장)는 “레트로 열풍에는 힘든 현실을 벗어나 과거 따뜻하고 좋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기분 전환을 하려는 심리가 숨어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이어주는 세대 공감형 콘텐츠”라고 말했다. 아날로그 필름카메라 콘셉트의 애플리케이션 ‘구닥’의 주 이용자층은 필름카메라를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1020세대다.
기업 입장에서 레트로는 실패 위험이 작고 가성비 좋은 마케팅 수단이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간 첨단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술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레트로 같은 독특한 소재로 주목을 끌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밀레니얼 세대, Z세대 등 저출산으로 점차 줄어드는 세대보다 인구도 많고 구매력도 있는 X세대, 베이비부머 등에 집중하는 것이 유리한 마케팅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