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들통난 퇴근길 호프집 대화… 대통령의 진정성 날려버렸다 “청와대가 국정 중추이자 두뇌”… 문 대통령의 인식은 옳은가 유능·도덕성·겸손 없으면 경질을
김순덕 논설주간
노 정부 첫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도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한 것 같다”며 그 법 때문에 경기가 더 나빠지고 참여정부도 더 욕을 먹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것도 맞다고 동의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그래서 성매매처벌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좌파진영 내 비판이라는 건 근친상간보다 보기 드문 이 나라에서 11년 전, ‘진보세력은 도덕적으로 옳다는 잣대로 문제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했던 김기원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지적이 지금도 유효한 현실이 갑갑해서 하는 소리다.
성매매처벌법 처리 때도 그랬다. 이상(理想)과 당위(當爲)만 강조할 뿐 세계와 현실은 외면했다. 정책에 대한 다른 견해를 의견 차이 아닌 도덕적 사악함의 표시로 본 성리학이 승하던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중종 때 조광조 역시 정의로운 선비가 집권하면 문제가 절로 해결된다는 믿음이 철철 넘쳤다고 했다.
그러나 말은 도덕적이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때 감동은 없는 법이다. 이날 퇴근길 불쑥 이벤트가 청와대의 탁월한 선임행정관 탁현민의 연출임이 알려진 순간, 문 대통령의 귀중한 자산인 신뢰는 날아가고 국민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말았다. 당장 코앞에 앉아 있는 서민들이 과격하고 급진적인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힘들다는데도 대통령은 정책을 고칠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그러니 아무리 보완책을 요청해도 대통령은 ‘자영업비서관’ 자리나 만들어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게 하는 식의 ‘국가주의’ 방식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오만이라는 권력의 치명적 증상을 모를 리 없다. 그는 대통령이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이 참모들의 ‘정보 왜곡’이라며 “청와대 내에서… 서로 의존하며 권력 나누어 먹기를 시작하는 순간 대통령의 비극적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고 지적했다. 작년 초에 쓴 책 ‘대통령 권력’에서다.
물론 문 대통령은 6·13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둔 뒤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국정을 이끄는 중추이고 두뇌”라며 참모진에게 유능함과 도덕성, 겸손한 태도를 당부한 바 있다. 미안하지만 ‘일자리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도 통계 조작에 청와대 비서관 일자리까지 늘리면서 정책을 밀고 나가는 모습은 유능함과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국정을 이끄는 중추이자 두뇌가 대통령비서실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비서실이 대통령의 보좌 조직이고 대통령의 두뇌는 될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국정을 이끄는 중추이자 두뇌는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왕적 청와대’ 뺨치게, 대통령을 진정성 없는 배우처럼 연기시키는 비서실이라면 국민의 눈에는 겸손한 비서실이 아니라 반역의 비서실이다. 휴가 기간 중 대통령은 내각 개편보다 비서실 개편을 고려해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