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문화부 기자
2006년 이상문학상 우수작품상을 받았던 이 소설이 문득 떠오른 건 요즘 자주 회자되는 ‘을의 전쟁’ 이슈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노동자와 소상공인들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입장은 서로 다르지만 생계가 달린 문제란 점에서 양쪽 모두 절박하다.
김영하의 소설도 ‘을의 대결’을 다룬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있다. 비좁은 아파트에서 여름을 나고 있는 불량상품의 피해자와 자기 몸을 바쳐서라도 문제를 은폐하려는 말단 직원의 대치는 희극적이면서도 서글프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예술적 가치를 논한 에세이집 ‘커튼’에서 “‘진짜 세상’을 보지 못하게 막는 커튼을 열어젖히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약자들의 ‘웃픈’ 대치는 불량식품을 만든 기업, 말단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조직과 팍팍한 경제 상황까지 환기시킨다.
최근 최저임금 문제를 다룬 국무회의에서도 문학작품이 인용됐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약자와 약자가 다툰다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며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직접 읊었다. 발언의 맥락을 보면 온몸을 태워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준 ‘연탄재’는 노동자나 소상공인이고, 그것을 함부로 차버리는 ‘너’는 정부, 국회, 대기업이다. 헌신과 사랑의 숭고함을 노래한 시에 최저임금 문제를 대입시켜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셈이다.
소설이나 시는 이렇게 각기 다른 해석과 상상의 여지를 남기면서도 표면적 갈등 뒤 숨은 문제들을 노출시킨다. 하지만 이면의 병폐를 볼 수 있도록 두꺼운 커튼을 열어젖히는 게 문학의 역할이라면, 그 문제를 실제 해결해 나가는 건 정부나 정치의 몫일 것이다.
시까지 인용하며 자진해서 언급했듯이, 이번 ‘을의 전쟁’을 초래한 장본인이자 해결의 주체 중의 하나가 정부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커튼’만 열었다 닫았다 해서는 곤란하다. ‘가슴 아프다’는 문학적 감상도 좋지만, 지금은 현실의 갈등을 풀 실제적 해결 방안을 내놓는 게 더 시급해 보인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