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반영 못하는 조사 불신 높아… 응답률 높이고 조사 횟수 줄여야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얼마 전 지도 학생이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된 한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다. 4월 8, 9일 서울 시민 812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 투표 후보’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1.9%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의 서울지역 득표율은 42.3%였다. 실제보다 문 대통령 투표자가 약 1.5배 과대 표집된 것이다.
이는 진보와 보수 유권자의 조사 참여율에 심각한 비대칭성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조사업계는 유일하게 참값과 설문조사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이 설문에 ‘거짓 응답’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공개를 꺼려 왔다. 그럼 같은 응답자가 현직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답한 것은 믿을 수 있을까? 설문조사 자체의 신뢰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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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조사는 ‘사람’과 통화를 해야 하는 까닭에 ‘표본 참여 편파성’이 클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실시된 276개 조사 결과를 ‘태블릿PC’ 논란이 시작된 2016년 10월 24일 전후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기준 시점 이전에는 면접조사가 ARS보다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을 약 0.24%포인트 높게 추정한 반면에 그 이후에는 4.48%포인트 낮게 추정했다. ‘보수’에 대한 부정적 사회적 시각이 부담스러워 조사 참여를 꺼리는 유권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응답률 10% 이하의 조사는 발표를 금지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응답률이 10% 이상인 조사는 오히려 문 대통령 지지율을 약 5.49%포인트 높게 추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응답률이 어정쩡하게 높은 조사는 오히려 왜곡이 심했다. 현재 실시 중인 면접조사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에 2017년 8월 28일∼9월 9일 실시된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는 응답률이 50%를 넘었다. 총 24억 원이 투입된 이 조사에서는 모든 참여자에게 참여료로 5000원씩을 지급했고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응답을 거부한 응답자에게 최대 14번까지 재접촉을 시도했다.
이 조사에서는 응답자 2만여 명 중 39.6%가 여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는 같은 시기에 발표된 갤럽 조사(9월 1주 차·50.0%)보다 10%포인트(또는 5분의 1) 이상 낮은 수치다. 응답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표본 참여 편파성’이 일정 부분 해소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로 갤럽 조사의 응답률은 18.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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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모든 정치 조사에 참값 대비 검증이 가능한 설문인 ‘지난 대선 투표’를 묻고 결과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한 후 해석은 유권자의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조사업계 주장처럼 ‘거짓 응답’이 일부 존재하더라도 실제 선거 결과와 차이가 크다면 유권자가 이를 고려하여 해당 조사의 결과를 해석하면 된다. 더 이상 여론조사가 여론 파악을 방해하는 현실을 방치해선 안 된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