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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 쩝쩝 ‘귀르가즘’…문화콘텐츠에서 ASMR이 인기 끄는 이유는?

입력 | 2018-05-27 15:38:00




음식 조리과정에서 생겨나는 소리 등 ASMR을 적극 활용한 tvN 다큐멘터리 예능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한 장면. 프로그램을 이끄는 백종원씨가 음식을 먹으며 내는 소리 역시 시청자들의 식욕을 자극한다. CJ E&M 제공

“이게 바로 하와이언 갈릭 버터 쉬림프(새우)입니다.(냠냠)”

자막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방송인 백종원 씨가 새우를 입에 넣는 모습이 클로즈업되자, ‘쩝쩝’ 소리만이 또렷이 귓가를 파고든다. 뒤이어 펼쳐지는 조리과정. 버터를 잔뜩 두른 프라이팬 위에 튀겨지는 마늘의 ‘지글지글.’ 뒤이어 통통한 새우 10여 마리가 들어가자마자 사운드는 거의 교향곡 수준으로 화면 가득 울려 퍼진다.

지난달 23일 방영을 시작한 tvN 다큐멘터리 예능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기존 ‘먹방’과는 뭔가 다르다. 백 씨의 감칠맛 나는 설명도 훌륭하지만, 하나의 요리가 어떤 히스토리와 과정을 지녔는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기획 단계부터 염두에 뒀다는 음식 연출 방식이 이채롭다. 마치 시청자도 함께 식탁에 앉은 것처럼 음식을 귀로 풍성하게 즐기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자율감각쾌락반응)을 적극 활용한다.

최근 ASMR이 ‘귀르가즘(귀+오르가즘)’란 신조어까지 낳으며 대중문화 전반에서 주요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방송은 물론 광고, 1인 미디어, 웹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대중에게 사랑받는다.

‘스트리트…’를 연출한 박희연 PD는 방송가에서 ASMR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제작진이다. 박 PD는 “백 씨와 함께 했던 ‘집밥 백선생3’를 찍으며 제작진도 음식을 조리할 때 나는 ‘소리’에 식욕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며 “시각에 집중했던 기존 방식보다 청각을 부각시키는 방식이 시청자에게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렌드에 예민한 광고계도 ‘귀르가즘’은 새로운 블루칩이다. 특히 소리를 활용하기에 먹거리 광고에서 요긴하다. 다니엘 헤니가 출연했던 치즈 광고를 찍은 이채훈 제일기획 크리에이터는 “청각을 극대화시키면 대중이 광고를 보며 ‘내가 아는 그 맛이네’라는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며 “ASMR을 통해 맛을 간접적으로 체감하는 공감을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묵화 배경위에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강조한 한 인터넷쇼핑몰 광고의 한 장면. 인기그룹 워너원 멤버들의 화면 위에 성우 배미향 씨가 시조를 읊는 내래이션으로 ASMR 효과를 더했다. 제일기획 제공

가장 유행이 빠른 유튜브 등 인터넷 영상에서는 이미 ASMR이 보편화 수준에 이르렀다. 유튜브에 개설된 전문 채널은 30만 개에 이르며, 관련 콘텐츠는 이미 1000만 개를 넘어섰다. ‘혼밥 ASMR 채널’ 등을 운영하는 유튜버 ‘초의 데일리쿡’은 “생생한 소리를 전달하려면 고사양 기계가 필요하고 작업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하지만 ASMR을 활용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을 보는 비율이 3~4배는 높아진다”고 귀띔했다.

최근 귀르가즘은 음식 분야 이외로도 확장하는 추세다. 1020세대에게 인기인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최근 출연 배우들이 에세이를 읽어주는 ASMR 버전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아이돌 ‘워너원’을 전면에 내세운 한 인터넷쇼핑몰 광고는 뇌를 자극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소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수묵화 배경에 새가 지저귀는 자연의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이 크리에이터는 “소리의 의외성이 시청자에게 신선함을 주는 효과가 ASMR를 통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중문화콘텐츠에서 ASMR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볼거리의 홍수 속에서 피로감을 느낀 대중들이 ASMR이 주는 새로운 자극에 쾌감이나 욕구를 느끼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현진 유튜브 파트너십 수석부장은 “1인 미디어에서 ASMR은 이미 대세 콘텐츠”라며 “과거에 단지 음식을 많이 먹는 ‘먹방’을 벗어나 최근엔 조리나 섭취 과정에서 소리로 식감을 전해야 대중이 찾는다”고 말했다.

ASMR이 최신 콘텐츠와 맞물리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아날로그 감성’이란 문화코드가 들어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디지털 문화가 발달할수록 대중은 역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경향이 있다”며 “ASMR 인기 이면에는 디지털 시대의 역행 혹은 반발이란 사회적 심리가 숨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 ASMR 콘텐츠 해외 사례  ▼

이달 초 한국 촬영 소식이 알려지며 화제가 된 도쿄TV의 ‘고독한 미식가 시즌 7’. 오로지 음식을 먹는 행위에만 집중하지만 2012년부터 꾸준한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홈초이스 제공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자그마한 식당은 어느 때 찾아가도 앉을 자리가 없다. 원래도 식도락가들에겐 사랑받는 숯불갈비 맛집이지만, 이달 초 일본 드라마를 촬영했던 소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지며 난리가 났다. 다름 아닌, 국내에도 팬 층이 두터운 TV도쿄의 ‘고독한 미식가’였다.

현재 시즌7에 이른 ‘고독한 미식가’는 철저히 음식에 집중한 ‘먹방’ 드라마다. 줄거리는 직장인 이노가시라 고로(마츠시게 유타카)가 일을 마친 뒤 허기를 느끼고 홀로 식당을 찾아가 요리를 즐기는 게 전부다. 하지만 고로의 생생한 표정이나 실감나는 묘사가 ‘신의 경지’라는 극찬을 받으며 승승장구. 특히 ASMR를 적극 활용한 소리가 예술이란 평이 많다. 지난해 연말엔 모든 프로그램이 피해간다는 NHK ‘홍백가합전’ 시간대에 특집편성 방송을 할 정도로 ‘거물’이 됐다.

이런 ASMR 콘텐츠는 해외에서도 인터넷 영상에서 먼저 각광받았다. 2010년 2월 개설된 가장 큰 규모의 페이스북 커뮤니티 ‘ASMR 그룹’은 소개글에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인간의 경험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현상(ASMR)을 규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2년 시작한 채널인 ‘젠틀위스퍼링’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상황극을 하거나 가위로 사각거리는 미세한 소리를 극대화한 콘텐츠 등으로 인기를 모았다. 130만 명이 팔로우하는 채널 운영자인 ‘마리아’는 다니던 직장을 관둘 정도로 상당한 수입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은 ASMR에 관한 학문적 연구도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다. 실제로 ASMR 컨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영상을 보며 “머리가 쭈뼛 서거나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며 과학적 효과를 확신한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에 따르면 2015년 영국 스완지 대학의 심리학 연구진도 실험을 통해 ASMR 컨텐츠를 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숙면이나 통증 완화에 도움을 얻었다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반면 미국 셰넌도어 대학의 생물약제학 교수인 크레이그 리처드는 좀더 신중한 입장이다. 리처는 교수는 ‘ASMR 유니버시티’라는 블로그를 개설해 ASMR 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의 사례를 온라인으로 수집하고 있다. 그는 “ASMR의 원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 과학적 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