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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자유민주주의가 울고 있다

입력 | 2018-05-21 03:00:00

“태영호, 北에 적대행위 내질렀다”… 표현 자유도 국익 고려하라는 與
반대 허용 않는 것이 전체주의다
北은 神政체제, 南은 文빠 세상… 타는 목마름으로 부른 노래 기억하나




김순덕 논설주간

혹시 내가 모르는 새 우리나라가 북한에 항복을 한 건 아닌가 싶다. 4·27 판문점 선언 뒤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사라졌고 남북은 화해협력의 길로 간다고 했다.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는 법이다. 그런데 다음 달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금 우리가 뭔 죄를 지었는지 혼사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각시 꼴이라면, 북한은 지참금 더 받아 오지 못하면 이 혼사 깨겠다고 을러대는 모양새다.

지난주엔 북한이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발언과 한미 연합 공군훈련을 구실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돌연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태 전 공사가 못 할 소리를 한 것도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성격이 급하고 거칠다는 것,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북한 체제상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한다는 정도다.

여당 반응은 충격이었다. ‘인간쓰레기들을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었다’는 북한 비난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그의 근거 없는 발언이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거들고 나선 것이다. “태 전 공사가 북한에 적대적 행위를 내질렀다”는 김경협 의원의 비판은 섬뜩할 정도다.

태영호는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의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나의 자유이기도 하다. 목숨 걸고 우리나라로 온 탈북민에게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이 북한에 적대적 행위를 내질렀다고 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그럼 운동권 출신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대체 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가며 민주화운동을 했는지 궁금하다.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잡아 주류세력을 교체해서는 북한 김정은 집단에 호의적인 사회라도 만들 작정이었단 말인가.

세상이 바뀌었다. 판문점 선언에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가 명시돼 있는 것을 잊었다. 대북 적대행위 중지가 비무장지대(DMZ) 확성기 방송이나 대북전단만이 아니라 국회에서까지 적용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젠 김정은 위원장 같은 ‘최고 존엄’이나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처음엔 정부가 부인했으나 한미 공군훈련에서 미 전략폭격기 B-52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내까지 비행할 계획이었다가 북한 반발에 바뀐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향후 북한이 변덕을 부릴 때마다 CVID도, 한미 동맹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보다 두려운 것은 집권여당 수석대변인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과 말하는 데 국익을 고려해 달라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공직자만 공적 책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민간인도 국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한마디로,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국익이 걸린 부분이 어디 한두 곳이겠나.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전체주의다. 국익이든 정의든 평화든, 혹은 최고 존엄을 위해서든 마찬가지다. 6·25전쟁 중 인민군 점령하의 인민재판을 목격했던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는 옳든 그르든 다수파의 주장에 동조하는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되기 쉬운 사회”라고 저서 ‘역사의 역습’에 썼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신바람에 깜빡 죽는 한국인은 정치적 종교적 카리스마에 쉽게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북에선 주자학에 주체사상을 결합시킨 김일성 수령의 3대 신정(神政)체제가 자리 잡았고, 남에서는 주자학 근본주의에서부터 노사모, 박사모, 문빠, 심지어 ‘촛불정부’까지 이어진 거다. 통역 없이 말이 통한다고 우리나라가 ‘김일성 민족’과 전체주의로 수렴되는 희비극이 벌어질 판이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 같은 ‘댓글 민의’가 드루킹이 조작한 여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촛불민심을 받드는 직접민주주의가 중요하다며 ‘코드 위원회’를 양산하면서 대의민주주의를 외면하는 건 제대로 된 민주정치라고 하기 어렵다.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핵심인데 새 역사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 표기에서 ‘자유’를 뺀 것은 자유주의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출범 1년이 넘도록 촛불정부를 자처하며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문화혁명’을 계속하는 것도 법치주의와 어긋나는 ‘분노와 복수’라는 지적도 있다. 집권 세력이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 불렀다는 민주주의, 그것이 자유민주주의가 맞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