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간 조약체결은 가능하나 원론적 추상적 판문점 선언을 국회동의 받는다는 것은 난센스 北-美 회담에서 비핵화 구체화돼… 투자·지원 나설 때 국회동의 필요해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더욱이 판문점 선언을 확고한 법적 기초 위에 놓기 위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북한은 국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조약 체결의 당사자가 될 수 없어 판문점 선언이 국회 동의 대상이 아니라는 야당의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당시, 정부는 국회에 동의를 요청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가 법적 효력이 없는 신사협정에 그치게 된 점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다. 그로 인해 남북관계발전법에서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사항에 대한 남북합의서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였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과 법조항에 비추어 보더라도 판문점 선언이 무조건 국회 동의 사항이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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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오히려 판문점 선언의 내용에 있다. 판문점 선언의 어느 부분이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사항에 관한 것인가. 사실 판문점 선언의 내용은 매우 원론적이고 추상적이다. 비핵화 문제뿐만 아니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 이산가족상봉을 포함한 남북한 교류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범위와 방법 및 절차에 대한 언급은 없다. 현재 판문점 선언에서 확정된 것이라고는 상호비방의 중지와 올가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점 정도다. 이러한 사항이 입법사항으로서 국회 동의를 받아야지만 추진할 수 있는 일인가.
남북관계를 안정된 법적 기초 위에서 발전시키고 이에 대한 여야의 정략적 찬반을 피하기 위해 국회동의제도를 도입한 취지에 비추어 볼 때 판문점 선언의 국회 동의에 대해 여당의 무조건 찬성, 야당의 무조건 반대는 모두 문제다. 판문점 선언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 단계에서 국회 동의를 받는다는 것이 난센스다. 차라리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공적인 결론을 얻고 그 이행과 관련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정해질 때, 예컨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우리가 북한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지원을 하기로 할 때, 그때 국회의 동의가 꼭 필요할 것이다.
지금 국회 동의를 받고 이를 근거로 그때 가서는 더 이상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고, 지금 국회 동의가 없다고 해서 그때 가서 국회 동의안을 상정조차 못 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면 현 단계에서 국회 동의가 갖는 실질적 의미는 무엇인가. 만일 정부 여당이 국회 동의조차도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향후의 정치 일정을 고려한 전략적인 계산에서 추진하는 것이라면, 국민은 이를 반대하는 야당보다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이를 추진하는 정부 여당에 더 큰 불신과 분노를 갖게 될 것이다.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