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 어르신 대상 체육교실에서 참가자들이 활기차게 동작을 따라하고 있다. 65세 이상인 사람을 지칭하는 ‘노인’ ‘할머니’ ‘할아버지’란 호칭이 시대의 변화를 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DB
얼마 전 외출을 다녀오신 어머님께서 상기된 얼굴로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아주 기분 나쁜 일을 당하셨다는 겁니다. 놀라서 “무슨 일이냐” 묻자 이러시더군요. “아니 글쎄, 나보다 5살 정도밖에 안 어려보이는 여자가 나한테 ‘할머니! 길 좀 물을 게요’ 하는 거 아니겠니?”
67세이신 어머님은 자신을 할머니라고 부른 그 행인을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저도 맞장구를 쳐드렸지만 솔직히 의아했어요. 저희 어머님, 손자가 4명이니 진짜 할머니 맞거든요. 조심스럽게 “그렇게 기분 나쁘셨느냐”고 묻자 다시 한번 역정을 내시더라고요. 노인의 기준이 65세인 것도 잘못됐다면서요.
한국에서 법으로 정한 노인은 만 65세 이상이다. “난 젊다”며 아무리 저항해도 피할 도리가 없다. 다만 이 기준은 1964년부터 53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기대 수명이 90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반세기 전 기준을 그대로 들이대니 ‘젊은 노인’은 불쾌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에 사는 이숙자(가명·73·여) 씨는 집 근처 노인종합복지관 대신 마을버스를 타고 여성회관까지 가 노래를 배운다. 이 씨는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노인복지관에 가면 그걸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김미자(69·여) 씨는 “지하철의 노약자석과 일반석 구분을 없앴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약자석에 앉을 때마다 ‘내가 벌써 노인인가’ ‘왜 노인들을 한 구석에 몰아넣나’ 싶어 서글퍼집디다. 그래서 일반석에 앉으면 이번엔 젊은이들이 ‘왜 여기에 앉나’ 눈치를 주는 것 같아 영 불편해요.”
그렇다면 노인들은 어떤 호칭을 원할까. 50~80대 회원들로 구성된 독서모임 ‘메멘토모리’ 멤버인 고광애(81·여) 씨는 “모임에서도 호칭 얘기가 몇 번 나왔는데 대안이 마땅치 않더라”고 했다. “우리도 ‘미즈(Ms·결혼 여부에 관계없이 여성의 이름이나 성 앞에 붙여 부르는 경칭)’같은 표현이 있으면 좋은데 없어요. ‘선생님’은 중국식 표현 같고, 프랑스어인 ‘마담’은 술집 마담 같고…. 우리끼리는 ‘누구 엄마’ ‘누구 할아버지’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주자고 했어요.”
국립국어원은 젊은 노인을 호칭하는 말로 ‘선생님’을 추천했다. 국어원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중국식이라는 건 오해”라며 “조선시대에도 선생이란 표현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자치구에선 노인 민원인을 어떻게 부르나
▽구로구=2000년대 중반엔 ‘고객님’이라고 많이 불렀는데, 지금은 ‘실명(OOO님)’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어르신’이나 ‘선생님’을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있음
▽관악구=할머니 할아버지 구분 없이 ‘어르신’이란 호칭이 기본. 다만 일부 지역에선 젊은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아버님, 어머님’을 쓰고 있음
▽마포구=어르신 민원인을 ‘실명(OOO)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음. 자원봉사하는 시니어들께도 ‘선생님’이라고 부름. 안면이 익숙한 여성분을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음
▽서초구=구청 민원실은 ‘선생님’으로 통일. 동 주민센터에서는 아직 ‘어르신’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음
▽양천구=직원이 현장에서 융통성 있게 판단해 부름. ‘어르신’ 또는 ‘선생님’이 많음
▽용산구=어르신을 기본 원칙으로 하되 ‘선생님’ ‘실명(OOO)님’도 사용
▽은평구=통일된 규칙은 없으나 연세가 많은 분들은 보통 ‘어르신’이라고 부름
※자료: 각 자치구(가나다순)
노지현 기자isityou@donga.com
임우선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