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수 정치부 차장
스노든이 얘기한 직업 외에 한국에선 정치인을 추가해도 될 것 같다.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된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텔레그램’을 사용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성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도 ‘텔레그램’을 사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은 청와대 내부자와 텔레그램보다도 보안 등급이 낮은 ‘바이버’를 사용한 사실이 최근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그널은 다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금도 쓰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일부 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을 주로 사용한 지 1년여가 흐른 뒤 당내에 시그널 이용자가 생겼다고 했다. 2015년 11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가장 안전한 등급으로 분류했다는 외신 보도가 계기였다. 만약 김경수 의원이 시그널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실체적 진실과는 무관하게 그렇게까지 감추고 싶은 게 무엇이었나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권력기관 감시의 최대 피해자인 야당 시절 소통 수단이던 메신저가 권력을 잡은 뒤에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요즘 청와대 인사들은 직급에 관계없이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 일반전화보다 통신조회나 디지털 포렌식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메신저 음성통화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보안 메신저 이용이 곧 보안 유지로 연결되진 않는다. 전문가들은 △휴대전화 운영체제(ISO)와 보안 메신저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야 하고 △휴대전화를 최신 기종으로 바꿔야 하며 △휴대전화 단말기 내 환경설정에서 보안등급을 최고 수준으로 관리하는 3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만약 한 가지라도 빈틈이 생기면 추적당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외부 보안만 강조하다가 자칫 내부 소통의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캠프에선 “외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 메신저(바이버)를 사용하고, 정해진 시간에 e메일을 보내면 읽고 바로 지운다”는 지침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당시를 회고하며 책에 이렇게 적었다.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다 보면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불신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되고, 이것은 역설적으로 보안을 지키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된다.” 김 의원도 비밀 대화방에 초대받지 못해 박탈감을 호소하는 당 관계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김 의원에겐 안팎으로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