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상처를 안으로 가둬 다독이는 묘한 속성을 갖고 있다. 자기만의 형식, 즉 일종의 질서를 갖고 삶이 가진 무질서에 대응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학, 그림, 음악, 조각, 무용 등은 형식의 예술이어서 삶의 혼란과 소용돌이, 상처를 그 형식 안에 가둔다. 그러다 보면 휘청거리는 삶도, 넘치는 고통도 조금은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예술이 가진 기능 중에서, 불완전하긴 하지만 그나마 유용한 기능이다. 난설헌 허초희의 시 ‘곡자(哭子)’는 좋은 예이다.
“작년에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올해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다”라는 시구로 시작하는 ‘곡자’는 자식들을 차례로 잃은 난설헌의 비통한 마음이 담긴 한시다. 자식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잃은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그 무엇으로도,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절망감이었으리라.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설헌이, 5개의 한자로 이뤄진 14행의 정형시에 자신의 복잡한 심사를 담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즉 무질서가 언어의 형식, 즉 질서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자식을 잃은 슬픔과 절망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애도의 마음이 약해졌을 리도 없지만, 그래도 현실을 응시하게 되면서, 자기 안에 들어선 또 다른 “배 속의 아이가/제대로 자랄 수 있을지” 염려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곡자’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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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