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친정 빼고 시댁만 받는 폐백 꼭 필요한가요”

입력 | 2018-04-11 03:00:00

[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5> 폐백, 결혼식의 기본이라는데…




■ 마지못해 따라가는 신부들

결혼식 뒤에 이어지는 ‘폐백’은 과거 처가살이가 일반적이었던 시절 신부가 시가에 찾아가 따로 음식을 올리던 풍습에서 유래했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는 “양가가 함께 결혼식에 참여하는 현대에 폐백은 불필요한 절차”라고 말했다.

시가에 가면 현관문을 열자마자 정면에 등장하는 대형 사진이 있어요. 바로 저희 부부의 폐백 기념사진이지요. 사진 속에서 저와 남편은 임금과 왕비 복장을 하고 시부모님 사이에서 환히 웃고 있어요. 아버님은 “최고로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며 대형 인화를 해 걸어 두셨죠. 근데 전 그 사진을 보면 한숨부터 나와요.

사실 처음부터 폐백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파트 전세금을 남편과 반씩 나눠 마련하고 혼수랑 예단까지 하느라 경제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거든요. 폐백까지 하면 음식비, 수모(도우미)비, 촬영비, 대여료 등 200만 원 가까이 추가 비용이 들더라고요. 결혼식 했으면 됐지 무슨 폐백까지 하나 싶었죠.

무엇보다 싫은 건 폐백이 친정은 쏙 빼놓고 시집 식구들만 받는 행사라는 점이었어요. 딸 키우는 정성이 아들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인 시대인데 왜 시가만 받아야 하죠? 하지만 결혼이란 게 저희 뜻대로 되진 않더라고요. “기본은 해야 한다”는 시부모님 말씀에 어쩔 수 없이 폐백을 드렸거든요. 대체 왜 결혼식에서 폐백이 ‘기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 학자들도 이젠 안해도 된다는데…

“신부님 빨리 뛰세요! 시간이 없어요. 드레스 조심하시고요.” 오호라, ‘다다다다’ 뛰는 발소리를 들어보니 오후 1시 예식 신부가 오고 있구먼. 이 신부는 어떤 얼굴을 하고 폐백실에 들어설지 궁금하네 그려.

아, 여러분께 내 소개 하는 걸 잊었네요. 나는 ○○웨딩홀 폐백실에 사는 병풍귀신이올시다. 수백 년 전부터 폐백 하는 방 병풍에 붙어살면서 수천, 수만 쌍의 폐백을 지켜봐 왔지. 신랑 신부의 마음속도 훤히 읽는다오.

어디, 지금 들어선 커플 좀 볼까? 흐음. 웃고는 있는데 역시나 두 달 전 폐백을 하네 마네 하다가 대판거리로 한바탕했구먼. 요즘 이 방에 들어오는 십중팔구는 그렇다오. 이들이 폐백을 두고 제일 성내는 이유가 뭔 줄 아시오? 왜 폐백을 시집 식구들만 받느냐는 것이외다. 그 사정을 내가 알려 드리지.

원래 우리나라는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처가살이하는 게 전통이던 나라라오. 남자 중심의 유교가 정착된 조선 중기 전까지 1000년 이상을 그랬지. 당연히 결혼식도 처가에서 올렸고. 그러다 보니 신부가 시집 식구를 볼 일이 없거든. 그래서 결혼식 3일 뒤 신부가 친정에서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을 들고 신랑 집에 찾아간 게 폐백의 유래라오. 신랑 집에서 하는 행사니 당연히 시집 식구만 받았지. 그땐 꽤 합리적인 의례였다오.

요즘은 신랑 신부 가족이 같이 모여 결혼식을 하는데 왜 폐백이 필요하냐고? 안 그래도 한국학 학자들조차 “이젠 폐백을 드릴 이유가 없다”고 하더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폐백이 필수로 여겨지는 건 이 땅에 뿌리 내린 가부장제 유교문화에 장사치들의 상술이 더해진 탓일 게요.

아이고, 수다 떠는 사이 신랑 신부가 임금 왕비 혼례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네. 임금도 아니면서 왜 저런 옷을 입나 몰라. 아무튼 이제부터 신랑 신부 옆에 서 있는 수모가 폐백의 의미를 설명해 줄 것이니 잘 들어보시오. 수모가 말할 때 신부의 표정 변화가 제일 재미난 포인트니 눈여겨보시길.

“자, 신부님은 폐백상에 올린 육포를 시어머니 앞에 드립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어머님을 정성껏 모시겠다는 뜻입니다.” 낄낄. 저 보시오. 신부 눈썹이 살짝 올라가지 않았소?

“자, 이제 시어머니는 육포에 살며시 손을 얹어 만져 주십니다. ‘며느리의 부족함을 내가 먼저 감싸 주겠다’는 뜻입니다.” 깔깔깔. 저 봐, 저 봐. 신부가 방금 마음속으로 ‘헐!’이라고 외쳤소.

“자, 이제 밤과 대추를 시아버지께 드립니다. ‘밤처럼 대추처럼 자식을 많이 낳겠다’는 다짐이요, ‘어렵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살아가겠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이고, 저 커플은 맞벌이인데 대체 몇 명을 낳으라는 건지.

자, 이제 신랑 신부가 시집 식구들에게 절을 할 시간이오. 신랑 쪽 친척들이 저마다 흰 봉투 하나씩을 들고 입장하는구먼. 절을 받고 절값을 주는 문화는 원래 우리 법도에 없던 것인데 언제부턴가 ‘룰’이 돼 버렸지. 저기 저 팔순에 가까운 큰아버지라는 사람은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되는 연금에 의지해 사는 양반인데…. 명색이 큰아버지라고 절값 100만 원을 만들어 오려니 얼마나 힘들었겠소.

참, 친정 부모는 어디로 갔나. 어디 보자. 저기 복도 끝에서 이제나 저제나 딸 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구먼. 쯧쯧쯧. 신부 입장에선 미안하고 서운키도 하겠네. 요새는 열 커플 중 한두 커플은 친정 부모도 같이 폐백을 받는다는데, 저 집은 ‘처가가 기가 세다’란 뒷말을 들을까봐 안 받기로 한 모양이야.

하이고, 드디어 끝났네. 자, 이제 수모에게 10만 원, 20만 원씩 수모비를 드려야 할 시간이지. 신부는 머리장식 벗기도 전에 정산하느라 바쁘네 그려. 신식 결혼식은 결혼식대로 하고 왜 또 전통 폐백까지 하겠다고 사서 고생인지 몰라. 하긴, 그래도 폐백이 계속돼야 내가 살겠지? 자, 다음 오후 3시 예식 신부 입장∼!
 
○ 당신이 제안하는 이 시대의 ‘신예기’는 무엇인가요.
‘newmanner@donga.com’이나 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이 느낀 불합리한 예법을 제보해 주세요. 카카오톡에서는 상단의 돋보기 표시를 클릭한 뒤 ‘동아일보’를 검색, 친구 추가하면 일대일 채팅창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임우선 imsun@donga.com·이지훈·위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