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뉴욕특파원
이날 성당에선 지난달 23일 할렘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마이클 데이비드슨 소방관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데이비드슨은 불구덩이 속으로 소방호스를 들고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가 홀로 남아 변을 당했다. 동료에게 업혀 나온 그의 산소통엔 산소가 남아 있지 않았다. 캄캄한 현장에서 홀로 산소가 다할 때까지 사투를 벌이다가 쓰러진 것이다. 그가 어떻게 현장에서 동료들과 떨어졌는지는 조사가 진행 중이다.
뉴욕은 15년 경력 37세의 베테랑 소방관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고인의 시신은 자택 롱아일랜드에서 맨해튼까지 뉴욕 경찰 오토바이 50대의 호위를 받으며 평소 타던 소방차 위에 실려 성당으로 운구됐다. 백파이프 소방악대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연주 속에서 4명의 어린 자녀와 젊은 아내가 뒤를 따랐다. 수천 명의 동료 소방관들은 정복 차림으로 도열해 그를 맞았다. 지역 방송국은 이 영결식을 2시간 넘게 생중계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우리 시는 오늘 밤 한 명의 영웅을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온 관광객 데버라 워스트보 씨는 “뉴욕시 전체가 고인을 기리는 걸 보고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며 “세인트루이스에선 이런 일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뉴욕은 유족들도 잊지 않았다. 9·11테러 관련 재단은 데이비드슨 가족의 주택 대출금 상환을 위해 10만 달러(약 1억500만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뉴욕소방재단은 데이비드슨의 네 자녀를 위한 장학금 모금을 시작했다. 의회도 동참했다. 척 슈머 상원의원(민주·뉴욕)은 “쓰러진 영웅 자녀 장학금법 등의 지원 법률을 마련했다”며 “순직한 소방관 경찰관 응급요원의 자녀들은 어떤 대학을 가더라도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예방을 위한 투자와 노력, 다치거나 순직한 소방관과 유족 지원만큼 중요한 건 생사의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가장 먼저 뛰어들어 맨 나중에 나오는 ‘제복 입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라는 걸 뉴욕시민들은 보여줬다.
이날 장례식에서 대니얼 니그로 뉴욕소방서장은 “아이들이 자라서 아빠가 진정한 영웅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며 ‘69’ 숫자가 새겨진 데이비드슨의 낡은 헬멧을 아내에게 건넸다. 데이비드슨의 부친 로버트는 그가 근무하던 69소방서 소방관으로 은퇴했다. 남동생 에릭도 브롱크스에서 뉴욕 소방관으로 11년째 일하고 있다. 헬멧을 건네받은 데이비드슨의 네 자녀 중 누군가는 영웅 아버지의 뒤를 따르지 않을까. 대를 이어 공동체를 지키는 수호신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박용 뉴욕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