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키스먼저할까요’ 감우성
최근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배우 감우성이 연기한 캐릭터 ‘손무한’의 안쓰러운(?) 로맨스남 이미지가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몇 해 전까지 멋진 외모와 재력, 매너까지 겸비해 ‘꽃중년’ 바람을 일으킨 중년 남성 캐릭터들과는 사뭇 달라졌다.
손무한은 한 때 잘 나가던 광고회사 대표였으나, 현재는 직원들에게 까칠한 쓴 소리만 일삼아 ‘좀비’ ‘돈 먹는 하마’ ‘재수 없는 선배’ 소리를 듣는 꼰대다. 이혼이라는 인생의 쓴맛을 경험해 마음의 상처도 깊다. 홀로 사는 집 화장실에 갇혔다가 몇 일만에 구조되는 등 그의 일상은 어딘지 모르게 처량하다. 드라마 애청자라는 50대 직장인 고모 씨는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적당히 서투르고 쓸데없이 진지한 아저씨”라며 “2006년 드라마 ‘연애시대’의 동진(감우성)이 그대로 나이 든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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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우리집 아재’
1월 개봉했던 영화 ‘염력’에서 류승룡이 연기했던 신석헌도 마찬가지. 그는 행색이 추레하고 약간은 비겁하며 이기적인 아버지다. 미혼의 세련된 ‘꽃중년’이 여성의 백마 탄 왕자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구도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현실에서 부딪히는 그 모습 그대로 연민을 이끌어낸다.
이는 지난해까지 대중문화계를 달궜던 생활밀착형 청년과 궤를 같이 한다. ‘흙수저’ ‘미생’ 등이 대변하는 20, 30세대의 아픔에 주목하는 콘텐츠가 각광을 받았다면, 이제는 나이대가 확장돼 ‘열심히 살았는데도 잘 풀리지 않은’ 우리네 40대 이상 중장년이 주 무대에 올라선 셈이다. 이전까지 단역이나 조연에 그쳤던 캐릭터가 이젠 비중 있는 주연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전문가들은 이런 생활형 중년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걸 2가지 측면으로 해석한다. 먼저 ‘미투 운동’과 같은 페미니즘 사고방식이 대중문화로 급속도로 스며들었단 분석이다. 과거엔 ‘상남자’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바라봤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난해 여성을 벽으로 몰아세우고 키스하는 일명 ‘벽치기’에 대중의 비난이 쏟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상처가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보듬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기존 마초 캐릭터에 대한 반작용으로 상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연민의 남성상이 지지를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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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