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정 산업2부 차장
올림픽 개막식에서 웃통을 벗어 던진 ‘통가 근육맨’ 피타 타우파토푸아는 원래 태권도 선수였다. 14개월 전에 크로스컨트리 스키로 전향했다. 이번 레이스에서 119명 중 114등을 했다. 스키 왕초보인 그에겐 올림픽 최저 출전 자격을 맞추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다음에는 수상 종목에 도전하겠단다.
핀란드 컬링 믹스더블의 오나 카우스테의 직업은 미용사다. 그의 짝인 토미 란타메키는 비즈니스 컨설턴트다. 캐나다 컬링 여자대표팀의 에마 미스큐는 디자이너, 조앤 코트니는 간호사다.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골리 앨릭스 릭스비는 신발 판매원이며 독일 선수단에는 현직 경찰도 2명이 있다.
우리 체육계에서 올림픽 경기는 개인적 성공을 위한 성전(聖戰)이기도 하다. 국가대표가 되느냐 안 되느냐, 메달을 따느냐 못 따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엘리트 체육으로 재단되고, 부모들은 이 경쟁을 뚫기 위해 무한정 헌신하고 희생한다. 그러니 국민 대다수가 쇼트트랙 경기장을 본 적조차 없는 나라가 쇼트트랙 최강국이 됐다. 메달리스트 성공기를 읽다 보면 대치동 학원가가 오버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헌신과 희생은 실은 개발연대에 더 맞는 덕목이다. 노동과 자본을 국가적 규모로 쏟아부어 선진국을 추격하는 요소투입형 성장기에는 개인을 넘어 국민 일반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했다. 다양성과 창의는 걸림돌로 치부되곤 했다.
경제 상황이 바뀐 뒤엔 이런 성공 모델이 정치적으로 거부됐다. 그럼에도 개인의 영역에선 가용 자원을 대량으로 자녀에게 투입하고, 자발적이자 경쟁적으로 부모의 희생과 헌신을 제공하는 모델이 더 강화되고 있다.
요즘 관가에선 행정고시 출신 젊은 사무관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과거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물불 안 가리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보고서 속에 자기 생각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사무관들이 스스로 생산하는 능력이 떨어지니 정책 아이디어를 관가 주변을 배회하는 홍보기획사 등에서 얻는 경우가 많다. 이를 정부 사업으로 발주하면 해당 기획사가 수주하기 쉬워진다. 비단 정부뿐 아니라 민간 부문도 다양성과 창의성 부족으로 국제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성공기가 드리운 그늘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고기정 산업2부 차장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