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의성에서 컬링은 생활놀이
나무 바닥서도 신나는 컬링 ‘팀 킴’ 5명 중 4명을 배출한 경북 의성여고는 지난해부터 매 학기 체육시간에 컬링을 편성해 간이 대회도 열고 있다. 지난해 9월 의성여고 학생들이 학교 체육관에서 플로어 컬링을 하는 모습이다. 의성여고 제공
22일 오후 경북 의성군 한 노인정에서 토박이 신순희 씨(73·여)가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TV에서는 전날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 대 러시아 경기 하이라이트가 나왔다. 이날 모인 할머니 할아버지 13명에게는 벌써 세 번째 시청이었다. 김영미 선수가 스위핑(비질)을 하자 “아이고, 잘 닦는다. 청소 참 잘하겠다” “이제는 마늘보다 컬링이 우리 동네 자랑이다”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은 상대방 스톤을 스톤으로 맞혀 밀어내는 컬링이 돌멩이를 세워놓고 돌멩이를 던져 쓰러뜨리는 비석치기와 비슷하다며 ‘빙판 비석치기’라고 불렀다.
세계랭킹 1∼4위 팀을 모두 격파하며 예선 1위로 준결승에 진출한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 ‘팀 킴(Team Kim)’. 이들이 성공한 비결의 하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에서의 친숙함이었다. 김초희 선수를 제외한 팀 킴 네 선수의 고향 의성에는 2006년 국내 첫 컬링경기장이 세워졌다. 이듬해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택하면서 팀 킴의 신화는 태동했다. 또한 의성 사람들에게 컬링은 낯선 겨울스포츠가 아니라 오랫동안 해온 놀이의 현대판일 뿐이었다.
○ 축제에서, 학교에서 컬링은 일상
동네 놀이에 컬링을 붙이는 경우도 많다. 매년 3월 말 산수유 꽃축제를 할 정도로 많은 산수유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5월이면 뒷산에서는 ‘산수유 컬링’이 열린다. 흙바닥에 원을 그려놓고 산수유를 던져 가장 중심에 가까이 던진 사람이 이긴다. 김경재 씨(60)는 “허리가 아파 빙판에서는 무리지만 컬링과 비슷한 놀이라면 어디서든 한다”고 말했다.
팀 킴 선수 4명의 모교인 의성여고는 지난해부터 체육시간에 컬링을 한다. 빙판이 아닌 나무 바닥에서 하는 ‘플로어(floor) 컬링’ 대회도 연다. 빙판이 아니니 브룸(broom·비)은 필요 없다. 그래도 학생들은 스위핑을 흉내 낸다. 표적도 컬링처럼 하우스라고 부른다. 최재용 교장은 “복도 청소를 할 때도 (학생들이) ‘헐’(영어 hurry의 줄임말·더 빨리 스위핑하라는 말) ‘업’(스위핑을 멈추라는 뜻) 등을 외친다”고 말했다.
○ 합숙 응원하는 ‘팀 페어런츠’
팀 킴 부모들은 올림픽이 개막하자마자 경기장이 있는 강원 강릉시로 올라왔다. 이들은 몇 달 전 강릉 가정집 한 층을 통째로 빌렸다. 함께 먹고 자며 응원도 함께 간다. ‘팀 페어런츠(Team Parents·부모)’인 셈이다.
스킵(주장) 김은정의 아버지 김광원 씨는 예선이 시작한 뒤로는 딸과 통화 한 번 하지 않았다. 경기장에 가도 멀리서 눈인사만 한다. 김 씨는 “불공드리듯 (응원)하고 있다. 부모 자식 간에는 텔레파시 같은 것이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경기를 보면 (그 마음을 느낀 딸이) 실수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을 졸이는 건 세컨드 김선영의 아버지 김원구 씨도 마찬가지다. 김 씨는 “딸과 다른 선수들이 올림픽 전에 (언론 인터뷰는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뭐든 선수들 의지대로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보다 낫다’는 문장이 올라있다.
조용한 응원은 부모들 몫만은 아니다. 팀 킴이 의성여고에 다닐 때 컬링부 코치였던 김경석 씨(53)는 컬링심판(ITO)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다. 중립 의무가 있어 선수들을 코앞에서 보지만 응원할 수 없다. 김 씨는 “올림픽 기간에 일부러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며 웃었다.
의성=신규진 newjin@donga.com·정현우 / 강릉=이지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