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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예나 지금이나 불조심

입력 | 2018-02-20 03:00:00


《불을 조심하지 않아 참혹한 변고에 이르도록 한 것이니
이는 분명 사람이 잘못하였기 때문입니다

不能愼火而致慘酷之變者 必由人事有失也
(불능신화이치참혹지변자 필유인사유실야)

―명종실록(明宗實錄)》
 

근래 들어 유난히 큰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되짚어 보면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는데 제도와 판단의 잘못, 그리고 부주의로 인해 재산뿐 아니라 많은 목숨까지 앗아가고 있다. 무척이나 안타깝고 분노를 일으킨다. 화재는 현 시대에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세종 8년(1426년) 서울에서 발생한 화재 때는 집 2000채 이상이 불탔고, 확인된 사망자만 30여 명이었다. 아이나 늙고 병들어 완전히 재로 변해버린 사람은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현종 13년(1672년)에는 강릉과 삼척 등 네 고을에서 산불이 크게 일어 민가 1900여 채를 태우고 65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소방시설이 미비했던 옛날에는 작은 불로 시작된 화재도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지기 쉬웠기에, 방비를 위한 제도의 마련에도 힘을 썼다. 금화도감(禁火都監)이라는 관청을 설치해 화재 예방 및 소방의 업무를 맡겼으며, 불기운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창고의 간격을 일정 정도 거리를 둬 짓게 했다. 처마 밑까지 담장을 쌓도록 하기도 했다. 관청과 민가에는 일정 간격으로 우물을 설치해 방화수를 확보했고, 밀집 주거지역의 가옥을 일부 철거하거나 도로를 넓혀 불길의 확산을 막으려 했다. 큰 화재 뒤에는 임금은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널리 언론을 청취하고, 음악을 중지하게 하는 등 반성과 경계의 뜻을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대비를 해도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당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고의 시설과 인력을 갖췄을 궁궐이지만 화재를 모면하지는 못했다. 명종 8년(1553년)에 경복궁의 큰 화재로 강녕전(康寧殿), 사정전(思政殿), 흠경각(欽敬閣) 등이 모두 불에 탄 일이 있었는데, 화재의 원인은 궁궐을 수리하며 온돌을 만들면서 과도하게 불을 땐 것이었다. 옛날에는 큰 재앙을 하늘의 경고로 인식하기도 했으나, 이 어찌 하늘을 탓할 일이었겠는가. 위의 말은 당시 사간원이 화재의 근원을 논하며 임금에게 아뢴 말인데, 지금도 경계로 삼을 만하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