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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책상물림 관료가 졌다

입력 | 2018-01-24 03:00:00

약자니까 善, 강자니까 惡… 언더도그마에 빠진 한국사회
해를 넘긴 최저임금 소동에 현장 총출동한 靑수석-장관들
설득은커녕 되레 한 방 먹다
삶의 현장 쓴소리 안 들으면 탁상정책 연전연패 계속될 것




고미석 논설위원

얼마 전 서울지하철 3호선에서 겪은 일이다. 마침 일요일 오전이라 전동차는 한산했다. 내릴 역이 다가오는가 싶은데 저만치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다가왔다. “이거 좀 사줘!” “아니면 그냥 1000원도 500원도 좋고.”

짧은 백발의 할머니가 장바구니 속 멸치를 가리키며 며느리뻘보다 어려 보이는 어느 여인을 집요하게 다그치는 중이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앉아 있던 젊은 엄마는 다소곳이 거부의사를 밝히고 날벼락 같은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막무가내. 급기야 할머니는 손을 뻗더니 엄마랑 아이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100원도 좋고 200원도 좋으니 줘. 남을 도와야 복 받는 거야.”

띄엄띄엄 앉은 승객들은 노파의 거센 언동에 질린 듯 불편한 심정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나 역시도. 누가 감히 불쌍하고 힘없는 노인을 건드릴쏘냐 하는 배짱인 듯했다. ‘약자의 완장’에 대한 계산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 다음 주 비슷한 시간대 3호선에서 할머니를 다시 마주쳤다. 홀로 앉은 여성을 골라 ‘좋은 일 좀 하라니까’라고 다그치는 호통과 압박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때 퍼뜩 든 생각. 이 할머니는 부지불식간에 한국 사회에 퍼진 ‘언더도그마 현상’을 생계유지 방식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 보수진영의 전략가 마이클 프렐에 따르면 언더도그마란, 약자는 힘이 약하고 그렇기 때문에 선한 천사로 간주하고, 강자는 힘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악마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신념이자 독단이다. 객관적으로 열세에 있는 상대적 약자(언더도그·underdog)에게 너그러운 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다. 측은지심처럼. 다만 그 정도가 지나칠 경우 심각한 상황이 된다. 비이성적 교리에 갇혀 왜곡된 거울로 현실을 바라볼 우려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비좁은 땅에서도 좀 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프레임이 기승을 부리면서 이념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강한 파괴력을 발휘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약자와 강자는 상대적 개념이며, 그들의 자리도 고정석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 따라 뒤바뀔 수 있음을 종종 까먹는다는 점이다.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최저임금 정책에 언더도그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란 미사여구 아래, 시장원리를 내세운 반발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그런데 ‘약자 보호’의 깃발 앞에서 막상 약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허겁지겁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경제 부처 장관들이 현장에 총출동했으나 쓴소리만 쏟아졌다. 정치적 이해가 스며든 판단을 마치 도덕적 우위에 있는 결단으로 포장한다 해서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님을 생활인들은 오래전부터 상식으로 숙지했기 때문이다. 미국 경영학박사 출신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을 향해 분식집 종업원이 “임금만 올라가면 뭐해요. 종업원이라도 장사가 잘돼야 받아도 마음이 편하고 떳떳한 거죠”라고 받아친 까닭이다.

자영업자 등에게 최저임금은 생계와 생존의 문제다. 납세자들에게는 가히 사활적 사안인데 그들 생각은 듣지도 묻지도 않은 것, 현장의 직감과 통찰을 얕잡아본 증거다. 영어식 표현으로 가방 끈 길고 책에서 지식을 습득한 사람을 북 스마트(book smart), 구르는 돌처럼 현실에 부딪혀 가며 인생학교에서 삶의 노하우를 터득한 이들을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라고 한다. 유교문화권인 이 나라에서는 좋은 학벌을 자랑하는 인재를 우위로 보지만, 서구에서는 현실에서 다채로운 경험과 도전을 축적한 스트리트 스마트의 상식과 지혜를 가치 있게 쳐준다.

움직이는 좌표를 맞히려면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유연한 궤도 수정이 가능해야 하는 법. 고정된 과녁보다 훨씬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은 움직이는 과녁을 닮았다. 정책의 수혜자라고 지칭된 ‘김밥집과 정육점 사장님들’이나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정부가 감싸주겠다는 청년들은 정작 그 혜택을 반기지도 믿지도 않는다. 공염불임을 직감으로 알기 때문인가. 기껏 최저임금을 올린 결과 일터에 따라 약자와 또 다른 약자로 나뉘는 부작용도 불거졌다. 희극인가 비극인가.

해를 넘겨 이어지는 최저임금 소동을 계기로 책상물림 관료들은 스스로 한계를 되짚어야 마땅하다. 한데 정책홍보란 미명으로 스트리트 스마트에게 한 수 가르치려고 했으니…. 어쨌거나 한 살짜리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은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는 핵심 정책”(장하성)임을 외친다. 국민이 참 만만하게 보이나 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