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현 사회부 기자
기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상대방에게 건넨 ‘칭찬’이었다. “아니요. 비례대표 제안도 많이 왔었지만…. 제 자리가 아닙니다.” A 시민단체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A 시민단체는 1990년대 초부터 풀뿌리 시민운동을 펼쳤다. 관이 나서기에는 예산과 시간이 부족한 시민 질서의식 갖추기와 위생환경 분야였다. 꾸준히 시민운동을 하며 목표를 하나씩 이뤄나가는 이 시민단체를 보면서 ‘아, 이런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면 좋을 텐데’ 하는 감동마저 느꼈다. 사무실은 비좁고 추웠다. 하지만 그곳에서 상근하는 운동가 3명의 눈빛은 강렬했다. “차 한잔 마시라”며 기자에게 건넨 종이컵을 보면서 ‘내가 이들의 소중한 예산을 갉아먹는 것은 아닌지’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이번 인사혁신처의 ‘시민단체 경력 호봉 인정’ 철회 소동을 지켜보다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인사혁신처는 동일하지 않은 업무라 하더라도 비영리민간단체 경력을 최대 70%까지 호봉으로 인정하는 공무원보수규정 개정안을 추진했다가 여론의 거대한 역풍을 맞았다.
인사혁신처와 행정학 전공 대학교수들은 이번 ‘호봉 논란’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거버넌스 차원에서 민관의 교류 소통 협력을 넓혀야 한다’는 추진 취지가 오해받았다는 얘기다. 동일한 비영리 민간단체 경력이라고 해서 모두 100%를 인정받지는 않는다는 방침이었다. 각 기관 호봉평가심의위원회가 호봉 반영 여부를 결정한다. 적용 대상도 6∼9급 호봉제 공무원에 한한다. 5급 이상 임기제 공무원과 별정직 공무원은 연봉성과제를 적용받는다. 과거 경력이 모두 반영되지는 않는 셈이다.
그럼에도 공직사회 내부와 공무원시험 준비생들 사이에서 반발이 컸던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시민단체의 달라진 위상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과거 시민단체는 거대 정부의 모순과 시행착오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싸우는, 어찌 보면 미미한 존재였다. 지금도 대부분의 단체는 그렇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을 두고 정부 부처 간에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환경보건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들은 증거를 모으고 피해자들 편에서 활동했다. 장애인이나 미혼모, 성매매 여성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시민단체는 오늘도 ‘싸운다’.
시민단체는 비정부기구(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라고도 한다. 시민운동을 하다 문제 해법의 한계를 느끼고 기성 정치에 반기를 들며 정치무대에 나설 수 있다. 순환 보직인 공무원보다 전문지식이 더 축적된 운동가의 경험은 사회적 자산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정부기구로 진입하는 스펙으로만 쓴다면, 또는 그렇게 유도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시민단체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