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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2018 문화계 샛별]뉴욕 홀린 ‘그게 아니야’… 그게 통했다

입력 | 2018-01-08 03:00:00

BBC가 뽑은 ‘올해의 소리’, 뉴욕서 활동 DJ·가수 예지




DJ 예지가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있는 동아일보 창간호 앞에 섰다. “처음 가사에 한국어를 넣기 시작한 건 미국인 친구들에게 제 사적인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였어요. 쓰다 보니 질감이 예쁘고 느낌이 좋아서 한국말을 악기처럼 사용하게 됐죠.”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5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앞. 오후 8시부터 댄스 클럽 ‘케이크샵’ 앞이 인산인해였다. 한 방송국 PD는 “과장 좀 보태면 ‘뉴 키즈 온 더 블록’ 내한 이후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고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6시간 뒤 시작하는 새벽 공연을 보기 위한 대기 줄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DJ 겸 프로듀서 겸 가수 예지(Yaeji·이예지·25)를 보려는 인파였다. 최근 영국 BBC는 ‘2018년의 소리(Sound of 2018)’ 목록에 예지를 올렸다. ‘…년의 소리’는 앞서 아델, 샘 스미스의 성공을 예견한 차세대 기대주 예측 리스트. 미국 유명 음악 비평 사이트 ‘피치포크’는 2017년의 앨범 50선에 예지를 포함시켰다. 왜 모두가 예지를 따르는 것일까. 잠시 한국에 들른 예지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 20대에 작곡 시작, 24세에 세계 주목


예지가 작곡을 시작한 것은 대학 3학년이 돼서다. “어려서 부모님 권유로 피아노, 플루트를 배우긴 했지만 즐겁지는 않았어요. 제 노래를 제가 만들면서 음악이 즐거워졌죠.”

뉴욕에서 태어난 예지는 앤디 워홀이 졸업한 카네기멜런대에서 개념 미술을 전공했다. 대학 방송국에서 디제잉과 작·편곡 프로그램을 접했다. “소프트웨어의 1개월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나는 게 아까워서 곡을 하나 만들어본 게 처음이었어요.”

졸업 후 뉴욕의 디자인 회사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직했다. 브루클린의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주로 노래를 만들었다. “직장생활 하면서도 주 4회는 밤 시간에 하우스뮤직 공연을 봤는데, 새로운 걸 시도하는 DJ가 생각보다 없었어요. 그 사실이 제겐 도전으로 다가왔죠.”

‘Drink I'm Sippin On’ 뮤직비디오 링크.

몽롱한 화성과 리듬 사이로 한국어와 영어를 섞은 가사, 이를테면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Drink I‘m Sippin On’)를 30번쯤 반복하는 주술적인 노래들, 독특한 패션 감각이 입소문을 타고 뉴욕 클럽가로 퍼졌다. 피치포크부터 ‘보그’까지 예지를 따라붙기 시작했다. 흑인들도 한국어 ‘그게 아니야’를 따라 부르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예지의 대표곡 ‘Raingurl’ 뮤직비디오 촬영 장면. 예지 제공



○ 예지 패션, 예지 음악의 원천은 외로움과 DIY(Do It Yourself)

“한국어는 소리가 아름다워 악기처럼 사용해요. 말에 각이 져 있어서 딱딱 끊어질 때마다 귀에 닿는 느낌이 좋거든요. 조용히 속삭일 때 그런 효과가 극대화되죠.”

예지는 3월부터 첫 세계 순회공연에 돌입한다. 북미 최대 대중음악 축제인 ‘코첼라 페스티벌’ 출연을 필두로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를 돈다. 1일 새벽에는 일본 도쿄 시부야의 새해맞이 파티에 첫 DJ로 나섰다. 클럽을 메운 일본인들의 한국어 제창이 뒤따랐다.

예지는 한국, 미국, 일본, 중국을 오가며 살며 이방인처럼 외로웠다고 했다. 같은 유색인종인 흑인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며 힙합 문화를 체득했다.

“힙합에 많이 나오는 ‘돈비가 내려라’는 식의 메시지가 실린 ‘Raingurl’에서 그랬듯 앞으로도 음악부터 뮤직비디오 연출까지 제가 책임지는 DIY 방식을 이어가고 싶어요.”

펑퍼짐한 옷을 주로 입는 ‘예지 패션’에 대해 그는 “서울에 올 때마다 동대문, 망원동, 인사동에서 사가는 저렴한 옷들”이나 “엄마의 1980년대 패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디자인 회사 직원에서 세계 힙스터들의 로망이 된 그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눈치다. “(수백만 건의)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를 볼 때마다 아직도 어색해요. 저는 그냥 계속 제가 원하는 새로운 음악을 저의 방식대로 해 나가고 싶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